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
서론 생각하기 위한 신발
-거의 모든 경우에 스타일의 문제는 어떤 지점에서 소비와 관련이 있고 스타일의 대중적인 관념을 전달하고 극대화하며 굴절시키고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의 위력과 연관이 있다.
-이 책이 추적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 즉 근대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스타일의 명성 의의, 소비에 관한 문제이다.
1부 눈의 마음
제1장 “...바닥없는 이미지들...”
-끊임없이 전달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전언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곧 스타일이란 하나의 생활방식이며, 그것도 한없이 풍요로운 부로 가득찬 유토피아적 생활방식이라는 사실.
-그러나 텔레비전의 터널 맞은 편에는 시청자가 앉아 있다. 그는 값싼 옷에 궁전도 없고, 수표는 다 썼으며, 가능성의 속박 안에 놓여있는 욕망의 불안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시청자는 일상생활이라는 결정적 한계 속에 파묻힌 채 텔레비전을 본다. 바로 이런 위치에서 시청자는 스타일과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스타일은 사람들의 이해방시과 그들 주변 세계와의 관계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스타일은 강력한 자기표현 형식, 즉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각인시키는 방식이다.
-페루에서 자란 린다 M "그 사회는 이제, 진정한 의미도 없고 바닥도 없는 매혹의 이미지들은 잔뜩 진열해놓고 있는 공허한 현실에 질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마취시키는 것을 더 좋아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스타일은 이제...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인간 자체를 잃고 있다.
-정치적 쟁점 및 정치가들은 이미지 관리자들의 화장술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들은 텔레비전에 잘 맞는 상품을 대중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이미지와 장식이 수행했던 역할은, 현대적 삶에서 스탈이 제시하는 변화무쌍함과는 사뭇 다르다.
제2장 상품과 표면
#시각세계의 가죽을 벗기는 사람
-1859년 올리버 웬델 홈즈는 사진에 관한 논문에서 사진이 “기억을 가진 거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진 이전에는, 사람이나 장소 또는 사물의 모습이 저마다 고유한 물질적 실체에 꼼짝없이 매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홈즈에게 사진은 이미지가 사물 자체보다 더 중요해지고 사실상 사뭉를 폐기할 수 있게 만드는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홈즈의 분석에는, 실체에서 떨어져나온 사물의 이미지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이미지들의 거대한 활황시장을 낳으리라는 선견지명이 담겨 있다.
“자연과 예술의 모든 인지 가능한 대상은 곧 그 껍질을 우리 앞에 벗어보일 것이다. 남미에서 별 가치가 없는 고기덩어는 제쳐두고 가죽만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처럼, 인간은 이제 모든 신기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것들을 사냥할 것이다.”
#스타일과 사회적 이동
-대개 권력의 지표로 이해되어왔던 세련된 의상들을 이제 성공한 상인들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귀족계급에게 상당한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상인의 부가 쌓이기 이전까지 귀족의 의복에 대한 권한은 오직 그들만이 호화로운 의상비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상업의 부상은 상업도시의 성장과 함께 나타난 ‘호화장정’ 필사본의 확산을 통해 잘 설명될 수 있었다. 이 시기 이전에는 책이란 봉건귀족의 귀중품이자 “최상의 사치품”이었다. 하는 채색 필사본을 제작하는데 드는 노동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의복 또한 그 개인보다는 신분에 속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고정된 신분의 광역 내에 위치한 하나의 특정한 신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적인 스타일 시장이 성장해감에 따라 이미지는 차츰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성공을 가리키는 징표가 되었다.
-생산은 스타일에의 접근 가능성과 따로 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오늘날 스타일 시장을 대량생산의 리듬과 맞물려 있고, 이것은 다시 표준화된 상품의 증산 및 선전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한 연결은 19세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14세기 이전에 설탕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희귀한 것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왕의 사탕과자가 부르주아적 도락으로” 상당부분 전환함에 따라, 특권의 표시지이자 민주화의 장치로서 기능하는 스타일의 독특한 능력이 드러나게 되었다. 설탕을 확고한 중간계급의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교하게 장식한 결혼기념 케이크도 부르주아적 습관으로 제도화되었다. 요컨대 그것은 중간계급의 번영을 향해 층층이 쌓아올린 기념탑인 셈이었다.
#표피적인 것의 승리
-스타일 상품의 대량생산과 마케팅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소비민주주의는 엘리트의 상징과 특권이 이제 대량생산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상에 근거했다.
-장식을 기계로 새겨넣은 것이 유행하면서 대량생산 스타일은 강력한 매력, 지속적인 유인요소를 갖추게 된 셈이다. 산업디자인 사학자 아서 펄에 따르면, 1830녀대가 되면서 상품의 표면에 “기술과 스타일을 용용하는 일”이 “마케팅에서 중요한 일로” 떠오르게 되었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말은 하나의 제품을 그 시작에서부터 만들어가는 공정계획을 뜻했다.
-건축은 표면과 본질의 분리로 인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 경골목 구조와 거튼 벽이 발전하면서 기술공학자들과 건축가들의 기업은 점점 분화되어 종종 서로 어긋나게 되었다. 공학자들의 임무가 건물을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건축가들은 한 디자이너가 말했듯이 “변덕스런 상인”의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19세기 건축에서 보이는 절충주의적이고 과장이 심한 특성은, 표면 그 자체를 목적으로 만드는데 그것이 몰두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정련된 사진
-19세기 이전 생활의 틀 속에서는 비싼 옷이나 물건처럼 유화도 신분의 징표였다. 다색 인쇄물들은 고급예술의 시각적 매혹을 바로 그 점차 민주화되면서 부상중에 있던 소비자 시장으로 옮겨놓았다. 19세기 후반의 광고와 포장술은 다색인쇄술을 지속적으로 이용했다. 다색인쇄는 민주주의-비록 이미지의 민주주의였지만-의 극적인 제창이었다.
-사진의 성장은 아마도 19세기에 이룩한 어떤 발전보다도 더 뚜렷한 근대적 스타일의 징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이전에는 초상화법이 이젤화의 전통과 연관을 맺고 있었다. 일찍이 초상화는 부의 소유물로 인식되어왔다. 어떤 종류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인격의 징표로 이해했듯이 초상화는 사회적 특권의 상징이었다. 사진이 탄생하고 스타일이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던 시기에 초상화의 붐도 일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위의 징표를 추구함에 따라, 미국에서는 1840년대부터 계속하여 초상화 스튜디오가 번창했다. 스튜디오에는 사람들을 부와 지위의 장신구들로 잔뜩 치장한 후 촬영한 상업사진들로 가득차 있었다.
제3장 예술과 상업의 결혼
#통합되는 영상들
-독일 거대 전기회사 AEG의 대표 발터 라테나우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었던 페더 베렌스 Peter Behrens에게 AEG를 하나로 묶는 단일한 기업을 외양을 창출해내도록 특명을 내렸다. 베렌스가 맡았던 임무는 “회사 건물과 제품들 그리고 간행물들, 거대한 터빈 공장에서 사소한 인쇄물의 마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공표된 ‘기업이미지’, 곧 찰나의 세계에서 이 기업만큼은 영속하리라는 사실을 일관되게 일깨워주는 그런 이미지의 탄생을 알리는 일이었다. 베렌스의 AEG작업은 이후의 산업 디자인 영역을 위한 원형을 창조해냈다.
#소비자공학
-건축가이자 1907년 미국박람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다니엘 번햄은 시카고 상인클럽 연설에서 “미는 다른 어떤 상품보다도 더 나은 수익을 가져다 주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청중들에게 조언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발전의 예들 가운데 하나는 광고이다. 월터 리프먼은 1914년 쓴 글에서, 광고의 개화를 사업가들이 “생산뿐 아니라 소비까지도 말아먹으려”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에그몬트 애런즈는 1929년에서 1933년 사이 광고회사 캘킨즈와 홀든 광고회사에 근무할 당시 ‘소비자공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캘킨즈 역시 1927년 <월간 대서양>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미-새로운 사업수단’라는 글에서 사업과 미학 간의 체계적 통합에 대해 역사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
-캘킨즈는, 젊은 광고산업이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예술가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따라서 예술적 기준에 의해 단련된 많은 사람들이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작업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고치기 작업에 영향을 받은 최초의 상품이 패션 상품과 화장품들이었다.
-이제 광고는 제품디자인과 상표화를 넘어서서 소매환경의 영역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렇게 더 잘 디자인된 상품들과 포장들은 그것이 팔릴 만한 더 나은 환경을 요구한다. 따라서 가게나 상점을 꾸미는 데에도 혁명이 필요하다.”
-캘킨즈에게는 한 상품의 효용성과 내구성이 오히려 판매를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캘킨즈에 따르면 미가 강제적인 소비를 자극함으로써 효용 요인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용인받을 수 있었다.
-1920년대 말이되면 시장의 스타일화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상품과 포장, 소매점 설비, 광고 등에 영향을 미쳤으며, 대중매체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린드는 1920년대의 “정간물과 신문의 광고 및 편집 내용에서 점점 스타일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사건의 변화는 1931년 비엔나에서 글을 썼던 에곤 프리델에 의해서도 어김없이 포착되었다. “이제 더 이상 실재는 없다. 단지 장치만이 있을 뿐이다. ... 상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광고만이 있을 뿐이다. 가장 가치있는 상품은 가장 효과적으로 찬미된 것, 가장 많은 자본이 광고에 투자된 것들이다. 후리는 이 모든 것을 아메리카니즘이라 부른다.”
#이미지와 욕망
-막 생겨나기 시작한 여러 재현의 장치들 덕에 많은 기업들은 사회과학적인 도구들을 동시적으로 차용할 수 있었다. 그런 도구들에는 대중심리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소비자의 마음에 미친 이미지의 영향에 대한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심리분석은 ‘새로운 사업적 수단’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지침서라 할 만한 <소비자 공학(1932)>을 에그몬트 애런즈와 함께 썼던 로이 셸던은 프로이트나 융, 알프레드 아들러, 파블로프 등의 저작에 의해 결실을 맺은 “놀랄만한 성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의 한 실례로 셸던과 애런즈가 촉감에 관해 도구주의적 논의를 벌였던 경우를 들 수 있다. 촉감을 후각과 더불어 서양의 근대문명에서 가장 덜 알려져 있고 가장 억제된 감각이었다.
-1930년대가 되자 이러한 감정이나 욕망 또는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스타일산업에서 통용되는 용어로서 중요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시기의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였던 해롤드 반 도렌은 “디자인이라 기본적으로 선과 형태, 색조, 색, 질감 등을 사용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예술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패서디나 건축예술학교의 장 아벨은 ‘근대 디자인’을 통제하는 지배적인 개념으로 ‘단순화와 통제’를 들고 있다.
-레이몬드 로위는, 산업디자인은 “시장을 염두에 두고 일상적 삶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상업적인 스타일의 영역에서 “일상적의 삶의 구성”이 근거하는 기본가정은 매일매일 삶이 가시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런 현상을 neomania, 곧 끊임없이 새것을 갈구하는 광증으로 보았는데, 여기서 그 ‘새것’이란 ‘구매가치’, 곧 살 만한 어떤 것으로 정의된다.
-1960년대의 일류 산업 디자인 회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타일의 노화는 상품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1930년대에 소비경제가 심각한 곤란에 처하게 되자, 스타일링과 “스타일 노화”는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들로서 최전선에 나서게 되었다. 에른스트 캘킨즈도 이에 동의하면서, 내구재조차도 다시 개념화해서 소모품인양 팔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2부 이미지와 정체성
제4장 선택된 사람들
#특혜의 징표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의 골드 카드 모집 안내편지
“선택된 분들만이... 골드 카드는...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줍니다.
-중세 말 이후로 지위에 대한 꿈이 거상들에게 도익부여를 해주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새롭고 기계화된 생산장치들이 출현함으로써 그 꿈은 경제엘리트들과의 사적인 결합을 훨씬 뛰어넘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매사추세트 노동국의 1873년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는 ‘가난’이라는 제목의 글
“중간 계급은 자신의 가난에 대해서 절대로 어떤 시위나 공공연한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곤궁을 광고하는 것은 신용을 잃는 것이다.
-1958년 데이비드 오길비
“염가판매의 이미지 대신에 상류계급의 이미지를 상품에 부여하는게 수지맞는 일이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첫인상
-‘신참 이주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곧 사기나 조소에 노출되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미국인’의 외모를 본따는 것은 생존의 장치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스타일의 소비자시장은 19세기에 시작되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발전하면서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에 깊숙이 도달하고 있었다. 스타일은 소수의 특권으로부터 수백만 명의 기쁨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었다.
-다양한 이방인들의 삶 속에서 스타일이야말로 극적인 필수품이었다.
제5장 완전함의 꿈
#개성 만들기
-엘리트 계급의 생득적 권리로부터 ‘대중’을 위한 기분전환으로 탈바꿈해온 스타일의 변화과정은 상징적 민주주의화 과정으로 수비게 해석될 수 있다.
-스타일(특히 의상의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편입하기 위한 장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렇듯 방어적인 이미지 사용에서 더 나아가 스타일은 또한 개성을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해되었다.
-생산엔진을 통해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량생산 상품들이 넘쳐흐르게 되자, 주식회사들은 점차로 판매과정을 체계화하고 관례화했다.
-C. 라이트 밀즈 <화이트 칼라(1951)>
“1910년대 이후로 관료제의 관심은 대량생산과 개별 소비 사이의 간극에 집중되었다. 세일즈맨십은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충족의 경로:사진과 유명인사
-스타일의 나머지 반쪽으로 기능하는 사진은 세심하게 계획된 조건에서 찍힌다.
-광고사진 작기인 마이클 랍은 “같은 다리에서 완벽한 발과 발목 그리고 장딴지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끔은 세 가지 모두 완벽하게 하기 위해 사진들을 조각내 붙여야 할 경우가 있다.”
-영화감독 세실 B, 데 밀 “ 보통 할리우드의 육체파 여배우라면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번호를 붙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방이나 주거공간도 스타일 사진을 통해 의례적으로 살균과정을 거친다.
-상업사진의 선구자 중 하나인 존 에버라드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낡은 오류가 사진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음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카메라의 세계에서는 꿈의 세계가 실현된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상업사진과 마찬가지로 유명인사 현상도 현대 소비문화의 이미지 재생산 메커니즘과 분리될 수 없다.
-일상적인 삶이 점차로 무의미해지고 표준화되는 사회에서는 ‘스타’가 개인과 인간에게 유의미한 도상을 제공한다.
-예술작품의 복제를 통해 예술품의 소유는 더 민주화되었지만, 성스러움은 삭감되었다. 원본의 맥락이 제거되고, 본래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의 복제과정에서 상실된 것을 ‘아우라’라고 불렀다.
-명상의 현상학은 그 반대에 가깝다. 위대한 예술이 대량 인쇄시장에서 아우라를 잃었다면 유명인의 개인적 삶은 대중적 복제를 통해 아우라를 얻는다.
-밀즈 ‘파워 엘리트’ “막강한 홍보 선전기술, 그리고 끊임없는 복제에 대한 미디어의 탐욕으로 인해 그들은 세계 역사상 어떤 국가의 상류계급도 받지 못했던 각광을 받고 있다.
-무명상태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살찌우는 그런 사회에서는 자기정체성과 완전함의 꿈이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과 미럽하게 엮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보여지고 기록되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1939년 마가렛 파란드 도프는 미국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할리우드의 소비유형(화면 상의, 그리고 화면 바깥의)이 대중 소비의 준거틀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 그로 인해 “버몬트 주나 오레곤 주의 주부들이 미용사나 양재사, 장식가들에게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형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패션의 독재자 역할로서 영화는 달리 겨룰 대상이 거의 없었다.”
-또한 유명들은 한 번 돈을 물쓰듯 써보면 어떨까 하는 모든 소비자들의 소망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소비자들처럼 대부분의 유명인들 역시 고용인에 불과하다...그들의 명성과 재산은 ‘경쟁의 모든 변동과 시장의 부침에 노출되어 있다’...명사도 ‘기계의 부속물’이다. 이 경우 기계란 미디어 산업이자 ‘최고로 환영받는 수단’이었다.
-명성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구매할 때까지만 지속된다. 만약 인기가 떨어지면-종종 일어나듯이-그들은 거대한 문화적 쓰레기더미의 일부가 된다.
#독립성의 장식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반복적이고 파편화된 행동들과 제도화된 속임수들은 자유의 실현을 한층 교묘하게 회피하게끔 만든다.
-스타일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활동에서는 회피하고 있는 ‘완전함의 꿈’을 발견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노동구조는 종종 좌절의 열매를 맺고 있는 반면, 소비주의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자유에 대한 욕망, 욕구하려는 자유를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순환을 통해 스타일은 그것을 대량생산하고 판매하는 본질을 보충한다.
-행동의 대리자롯 우리는 행동의 상징을 소비하도록 유도된다. 흔히 농담처럼 말하듯 “삶이 힘들어지면, 쇼핑을 간다.”
-산업 디자이너 J. 고든 리핀코트 “현대와 같은 대량생산 시대의 익명사회에서는 인간적 매력이라는 특성이 경쟁에 대응하는 확실하고도 특별한 수단이다. ... 사람들이 대량생산의 익명성을 싫어하는 한, 개성을 지닌 상품에는 언제나 판매의 매력이 더해져 있을 것이다.”
3부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이미지와 권력
제6장 눈가림한 야만주의
#역사의 외관
-유럽 봉건주의 맥락에서는 스타일과 소비형태가 귀족과 고위성직자들의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빈곤과 힘든 노동이 삶을 규정했던 세계에서 그러한 사치스런 이미지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의미했다.
-뉴욕이 5번가에는 백만장자들이 사회적 과시와 사생활 사이에 눈에 보이는 선을 긋고자 지은 맨션들이 들어선다. 그 결과 건축은 건설에서 장식으로 극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비록 자신들의 재산을 산업자본주의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이 19세기 도둑 남작들은 귀족적 특권의 요란한 진열품들로 스스로를 둘러쌓았다. 이들 산업귀족들의 번지르르한 겉치장 용품들은 위대한 과거의 이미지 창고에서 무차별적으로 꺼내온 것이었다. 이 이미지들은 전체적으로 달러화의 기념비에 지나지 않았다.
#미래의 외관
-1936년에 스위스 역사학자 후이징가는 “19세기는 결코 자기 스타일을 갖고 있지 못햇다. 그 대부분이 한번 번쩍한 뒤에 희미한 잔광만을 남길 뿐이다. 그것은 스타일의 결여, 스타일의 혼합, 오래된 스타일의 모방... 말하자면 모방하려는 경향성을 그 특징으로 할 뿐이다.”
-에디스 워튼은 1879년에 출간한 <집꾸미기>에서 부르주아 사회가 “상식적인 접근방식과 조화와 비율의 법칙이 디자인을 지배했던 건축의 황금시대”로부터 “비상식적인 난장판이 벌어지는 장식의 도금시대”로 타락했다고 보았다.
-“근대문명은 눈가림한 야만주의라고 불려왔다. 이러한 유형은 근대적 장식에 깃들어 있는 표피적인 우아함에 아주 잘 적용될 법하다. 건축적인 원칙들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집의 장식을 과거의 수준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19세기 문화의 ‘눈가림한 야만주의’를 넘어서기를 원했던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근대적 스타일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으로서 기계생산과 산업적인 효용성, 과학적 진실 그리고 수학적인 원칙들과 같은 규준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비엔나의 건축학자 아돌프 루스는 우아한 단순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자인을 했던 사람으로, 장식을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시대의 잔유물, 곧 ‘퇴보’의 징표로 보았다. 1908년에 들어서면 장식에 대한 루스의 생각은 그 고전적인 선언서 <장식과 범죄 Ornament and Crime>에서 제시되고 있는 역사문화적 발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론적 견해와 제유한다. 루스가 보기에 장식을 향한 충동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류의 문화진화사에서 그 초기 단계부터 계속해서 이월된 것이다.
-문화적인 시대착오 상태를 넘어서서 장식은 절제를 잃었다. 그것은 가치있는 노동력을 낭비하고 생산비용을 올리며, 계속 바뀌는 스타일에 의해 자극받는 비합리적인 소비를 조장했다.
-합리적 모더니즘과 아르누보 모두는 빅토리아 문화의 ‘눈가림한 야만주의’에 대한 대안들을 제공했다. 기계미학은 빅토리아 상류계급의 부풀어오른 과도함을 거부하며 효용성과 통제의 이상을 제시했고, 아르누보는 빅토리아 시대에 공공연히 부정했던 에로티시즘을 개방하여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만족의 중요성을 소비문화권 내에 정위치시켰다.
-“건축은 관습에 의해 질식당했다. ‘스타일들’이란 거짓말에 불과하다”라고 르 코르뷔지에는 썼다. ... 우리 시대는 매일매일 자기 스타일을 결정짓고 있다. 그런데도 불행히도 우리의 눈이 이것을 식별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시각적인 문법을 제공해주었던 것은 바로 공장이자 기계이자 측량도구(기하학, 수학)였고 또한 조직적 통제였다.
제7장 기계적 감성
-사회적 다윈주의자 허버트 스펜서의 선언을 따르자면, 기계미학의 발전이야말로 선진적인 문명의 기호이자 보다 고차원적인 질서의 기호이다. 예컨대 전에는 비예술적이고 실용적으로만 취급되었던 공장들이 ‘구조적 단순성과 조화로운 비율’에 대한 하나의 모델로서 그 ‘고전적’ 지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많은 유럽 사람들에게 미국은 미학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로 받아들여졌다.
-유럽 땅에서는 가장 비천한 곳에서조차 장식적인 모티프들이 위계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갖가지 도구들에서 보이는 얽매이지 않은 단순성이 비단 모더니티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곧 과거의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을 제시하고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선언문에서 엔지니어야말로 새로운 스타일의 예기치 못했던 예언자이며 현대의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가정과 작업장에서 산업적인 가치를 강화함으로써 사회는 산업적인 진보에 대한 약속을 보강하고 복창하는 것처럼 보였다. 낡은 껍데기와 새로운 실체 사이에 계속되는 긴장을 저지하지 않을 경우 혁명적인 파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공장의 원리를 반영하는 스타일을 통해 점점 더 위험해지는 대중을 길들여야만 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 혁명은 피할 수 있다.“
-발전소나 공장의 기능적인 수직선, 또는 손익 막대그래프의 수직선이 이 시대의 기호가 되었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1930년대 초반 이후로 건축의 ‘국제스타일’이 성장함에 따라 이 근대적인 외관은 전세계를 뒤덮기 시작한다. 건축가 필립 존슨이 국제적 스타일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강철과 콘크리트가 결국은 새로운 스타일의 핵심이 됐다.”
-스타일의 영역에서 보자면 미국은 유럽에서 단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이 모더니티의 스타일 윤곽을 잡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국면에 그 스타일의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미국의 소비산업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점점 더 산업 디자인의 매력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저항적인 날카로운 톱니모양의 선들이 유선형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모양에 그 길을 내주었다. 유선형은 미래의 외관이자 “새롭고도 독특한 미국 최초의 형식적 접근방식”으로 기능했다. 기계가 유선형이 되면서 영혼을 갖게 되었다. 기계의 진보적인 능력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고 있던 산업적 위기의 시대에는 유선형이 보다 구형에 가깝고 부드러우며 인간화된 기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유선형은 기계의 복잡함과 위협적인 직각들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만약 모더니즘의 일차적인 과업이 기만적인 대상세계의 겉껍질을 벗겨냄으로써 그것의 내적 작용을 드러내고 심미화시키는 것이었다면, 유선형을 그것을 덧씌우는 것으로의 회귀를 뜻했다. 한때는 형식과 본질의 통합을 주창했던 모더니즘이 이제는 내적 메커니즘을 감쌈으로써 여러 가지 모양을 연상시키는 껍질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메커니즘은 숨겨져 있는 신비한 것이 됐다.
-장식성을 넘어서 근본 진리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확고한 전망으로 시작되었던 한 세기가 다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20세기는 유선형(그리고 그 뒤를 잇는 다양한 형대)의 발전과 함께 세계시장의 내적인 구조와 권력관계 그리고 가치개념등을 전반적으로 반영하는 장식성의 새로운 추상적 형식에 몸을 맡겼다.
-장식성의 귀족적인 전통이 그것을 낳은 사회의 위계적인 특권까지 일괄 인수했듯이, 스타일의 근대적 궤도는 권력의 근대적 지형들을 미화시켰다. 이제는 바로 이런 지형들을 살펴볼 차례이다.
4부 현대문화에서의 스타일의 정치학
제8장 형태는 가치를 따른다.
#1948년 로마
-<자전거도둑>(1948)은 파시즘적 영화, 또는 할리우드 영화의 지배 미학인 ‘수퍼 스펙터클’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술적으로 향상된 세계에 대해 그 스타일상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네오리얼리즘은 정치의 심미화를 거부했다.
-자바티니에게 네오리얼리즘 영화란 “현실의 허기를 똑바로 보고 분석하려는 압도적인 열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생겨난 것을 뜻했다. 네오리얼리즘은 “타인을 향해서, 혹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향해서 확고한 경의를 표하는 하나의 행위”와 같았다.
-네오리얼리스트들의 영웅 안토니오가 할리우드 스펙터클의 기념비적 스타인 리타 헤이훠스의 사진을 붙이기 위해 고용되었던 것이다.
-가차없는 노동시장에서 그는 시장의 차가운 합리성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는 하나의 상품이자 대상물이었다. 리타 헤이워스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서 그 가치가 시장의 힘에 의해 계산되는 하나의 ‘얼굴’이자 ‘몸뚱아리’일 뿐이었다.
-유혹적인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말을 건넨다. 특히 그들은 눈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말한다. 그것들은 저마다 신중히 고려된 창작의 산물로서 각기 특수한 매력과 목적에 따라 선택되며 나름대로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저 바라보기만을 교육받았지, 보는 동시에 해석하도록 길러지지는 않았다. 우리의 눈은 별다른 비판적 저항없이 이미지들을 빨아들인다. 마치 그 이미지들이 멀리 있으나 잡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신의 예정된 계시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상업적 이미지의 선택적 유혹의 틀 내에서 동시대 사회의 지배적 권력관계는 노동과 자원을 착취하는 임의적 법칙의 체계가 아니라 사물을 자연스럽고 심지어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둔갑한다. 권력의 비밀은 보호받는다.
#가치의 증발
-신용사회 이전에는 부의 개념이 현금으로 측정되어, 현금이 없는 것은 곧 물질적 빈곤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돈을 사용하는 것은 가난, 아니면 적어도 어떤 불법성(거리의 거지들, 마약 거래인들, 뇌물 수뢰인 등등)의 명백한 지표가 되었다.
-추상의 추상이라 할 수 있는 신용카드는 이제 지불능력을 표시하는 가장 광범위한 기호로, 어떤 한계 이상의 삶을 살고 있다는 공식적인 선언과 같다.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
-맨 처음 추상적 가치를 심미화하게 된 것은 상업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가운데 생겨난 일이지만, 그 무게없는 추상화의 미학을 심도깊게 연구하는 것은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 화폐와 신용 그리고 투기의 경제가 지배력을 갖기 시작한 이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마천루들은 대중문화에서 진보, 초월적인 것에 다다르기, 창조적인 인간정신의 자유와 같이 전반적으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마천루들은 20세기 초반 이래로 줄곧 진보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기리는 최고의 기념물이었고, 모더니즘을 상업적으로 해석해놓은 구현물이었다.
-그러나 마천루는 특정한 사회 및 역사의 외관을 구체화한 형식이다. 그것의 웅장함은 추상적인 금융투자가 구체성과 풍부한 자원성에 기반한 가치체계를 압도하는 사회에 기초한다.
-마천루의 수직방향은 땅과 그 자원을 가장 상식적인 부의 지표로 이해하는 사회의 기념물들에서 보이는 수평방향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건축이 재산과 가치의 의미변화를 표현하는 시각적인 수사라고 할 수 있다면, 마천루는 자연의 조건에 덜 의존하는 새롭고 좀더 투기적인 사회가 도래했다는 신호라 할 수 있다.
-건축에 대한 하나의 접근방식이었던 마천루는 이윤을 따르는 형태의 본질을 구현했다. 이제는 지반을 전혀 확장하지 않고도 탐욕과 기술공학이 허락하는 만큼의 높이까지 부동산의 가치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층건물은 제일 높은 층에 있는 사무실이나 전망대를 통해 개별적이고도 유례가 없는 권력의 경험을 제공한다. 그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대표이사나 관광객은 신의 눈으로 인간의 무리를 내려다본다. 아래에 있는 인간들의 문제는 심심풀이처럼 하찮은 것으로 축소되고 위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넓은 시야로 인해 자만심을 갖게 된다.
-1920년대가 되면 추상적이고 무게가 없는 가치에 관한 이론의 관할구역이 건축의 영역을 넘어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소비자공학의 경제적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이에 자극을 받은 새로운 미학적 원리들이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빗물질성이라는 모티프, 즉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라는 원칙이 계속하여 반복되었다.
-여성의 패션은 이런 근대적인 경향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였다.
-값싼 이민 노동자들은 착취하는 공장에서 생산된 이 초기의 대량생산 패션은 전통적이고 귀족적인 엘리트 집단이나 부르주아 졸부들의 패션을 모방했다.
-그러나 1920년대가 되면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패션의 윤곽선이 변화한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주요 물자들이 전쟁용으로 징발되었다.
-패션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료를 더 절약하고 덜 낭비하는 사용방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여성의 변화하는 사회적 역할도 새로운 패션의 기준을 독려했다.
-가정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코르셋과 거추장스런 겹겹의 옷은 자격을 상실한 장치임이 드러났다. 옷을 개조하는 것은 여성해방의 기초 구성요소를 차지했다.
-1920년대에 패션가는 재료의 재배치와 여성의 사회적 포부에 부응했다. 건축의 영역에서 가장 똑똑한 이데올로그를 발견했던 추상적 이상이 여성의 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여성 패션이 딱딱한 신체에 의거하고 있다면, 새로운 패션은 땅에 구속된 수평적 확산의 개념 대신 구속받지 않는 수지적 우월함을 채택했다.
#몸의 정치학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가치의 심미화를 가장 심도깊게 증언해주는 영역은 다름 아닌 신체적 이상형의 진화에서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상적 신체 표현에는 여전히 토지적 가치가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성향들이 반영되어 있었다. 무게가 나가는 장식품들이 귀하게 여겨졌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잘 먹어서 통통해진 신체는 물질적 풍요를 가시화하는 증거에 해당했다.
-대상적 가치가 즉각적으로 재생산 능력과 결부되었던 여성들에게 큰 가슴과 토실토실한 엉덩이 역시 아름다움의 가장 확실한 요소였다.
-몸무게 감량을 위한 절식은 아직 20세기의 강박관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여성의 마른 신체는 신경증과 균형 잃은 삶의 징후에 불과했다.
-한때는 농경적 가치의 풍요로운 저장고를 상징했던 여성 신체의 이상형도 추상적 시장가치의 유동적 특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1910년대 중반 이후로 신체의 부피는 부담스러운 초과분이자 유행에 뒤떨어져 있다는 신호로, 구시대적인 취향으로 간주되었다. 그 시절 대중잡지에서 ‘신여성’이라 불렸던 여성들은 “가늘고 늘씬하며 근육질의 표범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문화적 관습에 대항하며 어디서나 새로운 문화를 선전해대는 목소리들, 특히 대중매체는 날씬함의 미덕을 끈덕지게 선전했다.
-할리우드 환상공장은 관중들이 계속해서 모방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꾸준히 제공했다. 표준화된 마네킹들이 차에서 담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팔아먹는 광고의 기초요소로 자리잡게 되고,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라는 말이 점차 상업적 풍경 속의 광고간판들을 뒤덮기 시작했다.
-세계의 유수 산업디자이너였던 레이몬드 로위는 1979년 자신의 50년 경력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러한 경향성을 지적했다.
-로위는 자신의 ‘스타라이너 Starliner' 디자인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자동차의 스타일링이 진정한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했다고 말햇다. 이때까지 본체의 ’캐릭터라인‘은 차를 둔하게 보이게 하는 판들로 이뤄졌다고 그는 썼다. 구근형이 이른바 1930년대 유선형 자동차의 특징이었다. 로위는 대안적인 디자인 접근방식에 입각하여, ’음각(쑥 들어간)표면‘을 도입했다. 그 결과 “스타라이너가 배고프고 가냘픈 모습을 하도록” 만들려는 그이 목표를 달성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 개조작업에서도 로위는 위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사람의 모습을 본따는 공식을 사용했다. 1916년에 최초로 도입된 코카콜라의 저 유명한 ‘허블 스커트(무릎 아래를 좁힌 긴 스커트)형’ 병은 풍요로운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이상형에게 바치는 찬사를 유리로 표현한 것이었다.
-거의 50년이 지난 다음 로위가 이 익숙한 트레이드 마크를 개조하라는 임무를 받았을 때 그는 단지 변화한 여성다움의 윤곽선에 의거하면 되었다. 액체유리를 늘여서 병의 살을 뺌으로써 코가콜라 병은 이제 “날씬해진 모습”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생산품 디자인을 이상적 몸매(특히 여성의)와 결합시키는 일이 매우 흔해졌다. 담배산업은 버지니아 슬림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과정을 문화적 상투수법으로 만들었다.
-분명히 절식과 체중감량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 이후 여세를 몰아 오늘날에 이르면서 ‘몸매’에 대한 열광의 정점에 다다르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체의 영역에서 비물질성을 추구하다보면 병리적인 결과에 다다른다. 바로 그 육체의 존재자체가 완전함과 만족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거의 기아상태에 있는 신체적 이상, 구조물리학의 초월을 주장하는 건축적 이상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우선성의 도치는 숙명적인 타락을 드러내준다.
제9장 형태는 권력을 따른다
#단단한 신체들
-기 앙도로Guy Endore의 <강철인간>;엔지니어가 부드럽게 작동하는 통제 시스템의 창시자라면 그 시스템은 숙련노동자의 파멸 그리고 기계와 인간의 맞바꿈에 입각하고 있다.
-지칠줄 모르는 ‘강철 팔뚝’을 가진 기계는 남성성의 원형으로 등장하는 바, 그 거푸집으로 새로운 인간형을 떠낼 수 있다. 만약 여성의 몸에 대한 이상화된 관념이 근대적 가치구조를 연계해주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면, ‘남성적 육체’는 근대적 노동조건과 노동규율이 새겨 있는 명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 조지 룬드버그와 미라 코마로프스키 그리고 메리 앨리스 매키네르니는 1934년에 소비사회 출현의 맥락에서 ‘여가’의 문제를 다루는 글을 썼다. 그들은 대량생산 산업과 소비화된 ‘여가’에 대한 정의 사이에 공생관계가 있다고 보고 노동의 세계와 일상적 삶의 양립 가능성을 획득할 필요에 대해 주목한다.
-이러한 이상은 34세의 뉴욕 투자회사 중간간부인 레이몬드 H의 일상에서 실현된다.
-그의 마음의 눈에 존재하는, 사진적 관용어의 힘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고 및 기타 다른 미디어의 스타일을 통해 계속 강화된다. 완벽하게 균형잡힌 기계처럼 보이는-그 대가로 육체는 차고 단단해진다-이상형은 우리의 눈 앞에서 계속 행진하고 있다.
-레이몬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이 광고들은 1980년대 중간계급의 신체적 수사학의 일부이다. 그들 광고 모두는 자기탐닉적 업적주의와 과시적 소비행위 그리고 경쟁적 육체 전시의 대상으로서 자아관념 등이 뒤섞여 위압적인 성공의 상징이 되어버린 한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미국의 초기 산업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헨리 드레퓌스; 인체는 측정될 수 있고, 정신적 동기부여는 세분화될 수 있으며, “인간행동과 기계 디자인” 사이의 편차는 메워질 수 있다.
#통제선
-푸코의 판옵틱주의라는 용어는 감옥을 위한 제레미 벤담의 혁신적 디자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벤담의 책 <판옵티콘Panopticon>(1791-92)에서 제창된 바 있다.
-벤담이 기술했던 바와 같이 판옵티콘은 “원형으로 된, 반짝거리는 쇠우리이다. ...죄수들은 원주형으로 둘러싸여 있는 각각의 방(세포)속에 있고, 직원들, 간수장, 목사, 외과의사 등등은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판옵틱 건축은 후광, 중앙감시소 그리고 공간적 통일을 새롭게 이용함으로써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이미지로 재현해주었다. 그것은 또한 공간의 개별화와 대칭적 규제를 통해서 감시와 복종 그리고 규율의 우선성을 구현했다. 그것이 의도했던 결과는-감옥에서 적용하든 아니면 공장이나 학교에서 적용하든 상관없이-사회적 통제를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개인(죄수, 노동자, 학생)이 보이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격감시켰다.
-공장자본주의는 경영자들에게 간수들이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많은 문제거리들을 던져주었다.
-동일한 문제들이 학교, 병원, 수용소 그리고-사무노동의 성장과 더불어-사무실의 설계형태를 만들어냈다.
-다니엘 번햄은 미국 박람회의 수석 건축가이자, “진보적인 도시계획운동을 강조하는 사회적 전망에 대한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1909년에 출간되었던 <시카고 도시계획>의 저자였다.
-“도시에는 유지되어야 할 위엄이 있으며 훌륭한 질서는 물질적 진보에 필수적인 것이다.” “도시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을 고취하면서 거주자들의 눈을 사로잡게 될 기념비적인 공공건물군은 그 질서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기술적 완벽성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
-로고는 식별가능한 상표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술적 지배, 숭고한 완결과 통제의 리듬까지 전달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엘리엇 노이즈가 1950년대에 착수했던 IBM 이미지의 관현악적 편성 또는 다른 대기업들의 값비싼 ‘외관’을 들여다보면 정확성과 우수성 그리고 탈인간화에 대한 강조가 분명해진다. 상표나 제품 디자인이 해당 기업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을지라도 그 디자인은 인간이 개입했다는 어떠한 시각적 자취도 없다.
-공장의 많은 사람들이 강고한 관료주의적 미로나 생산의 혼돈 속에서 틀에 박힌 미미한 작업을 수행하느라 자기 인생을 소모하고 있을 때, 많은 상품들, 특히 가구나 전자제품들의 디자인은 당신이 그 상품을 구매하게 되면 통제할 수 있는 손을 가지게 되리라고 암시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계에서는 전투기와 로케트의 외관이 가정용 차의 외관에 응용되고 있었다. 제너럴 모터스 사에서는 디자인 감독 할리 얼이 이중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에서 영감을 받아 자동차의 꼬리지느러미 시대를 열었다. 크라이슬러 사에서는 자동차의 계기판의 모서리들을 제트 전투기의 조종실 조절판처럼 둥글게 처리했고 몸체는 로케트와 제트 항공기의 ‘시각적 어휘들’을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장식적 웅장함에 대한 경쟁이 19세기 후반 무렵 중간계급의 형성에 본질적인 것이었던 것처럼 예술 테크놀로지의 위엄에 대한 접근은 20세기 중간계급의 정체성 확보에 근본적인 것이다.
#판옵틱주의의 녹화
-기업 모더니즘이 진보의 ‘공식적인’ 역사를 표현했다면 1930-40년대에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허기가 생겨나고 있다. 서부영화는 신화적인 과거, 즉 광활한 대지, 거친 자립심 그리고 소유의 기득권에 대한 깊은 불신 등을 통해 프론티어적 삶의 가능성 및 특징을 형성하고 있었던 그 시기로 관객들이 되돌아가게 해줌으로써 이러한 허기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40년대가 되자 도피와 새로운 탄생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바로 도시 근교 그리고 그것에 대한 관념의 성장이었다.
-교외의 기호학적 형태는 산업문명의 질병을 치료하는 상징적인 해독제 역할을 한다. 만약 도시 및 도시의 도상학이 노동과 상업적 우선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교외는 레저가 공식적인 주요 모티프 역할을 하는 그런 장소이다.
-1940년대 중반까지 주거지의 대량생산은 군사시설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줄과 줄을 맞추어 집단적으로 막사를 배열함으로써 인식된 질서, 도구화된 질서를 표현하고 있었다. 건축에 대한 그러한 판옵틱한 접근방식은 또한 고소득을 내는 실험양계장에 사용되기도 했다. 제2차대전 시기에 군대용 주거지를 만들었던 르비트는 1945년이 되자 ‘생산공정 라인적인 건축기술’을 ‘시민용 건물’의 건축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건축물들은 헨리 포드가 자동차 생산공정 라인을 혁신했던 그 노선에 따라 지어졌고 르비트타운의 선전은 광고와 소비자공학이 닦아놓은 노선을 따랐다.
-임계거리에서 조망해보면 집들 자체도 일률적인 격자형, 곧 수평적 공간의 판옵틱한 조직으로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에 제너럴 모터스 사는 견고하고 실용적인, 그러나 단일 모델이었던 헨리 포드 모델 T에 대한 마케팅 전략으로 모델과 색상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1940년대 중반에 부화하기 시작한 대량생산 주택산업은 표준화된 다양성에 접근하는 그들 나름의 방식을 발견했다.
-케네스 T. 잭슨은 60년대가 되면 “우연히 교외를 방문한 사람은 자신이 보스턴 근교에 있는지 아니면 달라스 근교에 있는지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자동차가 교외의 생활에 동기를 부여하는 원동력이었다면, 텔레비전은 그 반 대 짝에 해당한다.
-텔레비전은 일찍이 그 유례가 없는 이미지 기계를 자정 속에 주입시키면서 전후의 일상생활에서 강력한 가구로 비치되었다. 1950년 <건축포럼>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대다수의 대규모 건축업자들은 이 붙박이 TV가 “거실의 중심을 차지했던 값비싼 벽난로를 급속하게 제거해버리고 궁극적으로 그 역할을 대체”해주길 바랬다.
-텔레비전은 강력한 재통합의 도구를 출연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증가추세에 있던 개별화된 인구들을 유사한 이미지와 유사한 정보 그리고 유사한 유명인사와 유사한 상품들로 둘러싸서 통합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텔레비전은 교외적 판옵틱주의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제10장 형태는 낭비를 따른다.
#돋보이는 소비
-폐기물 상당부분은 포장품들이 차지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포장만이 아니다. 점차로 과거에는 ‘내구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생산품들이 재빠르게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일회용 제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그것은 소비하는 행위를 폐기하는 행위와 용접시킴으로써 시장이 계속적으로 더 많은 상품을 갈망하게 만든다.
-일회용품이 초역사적인 인간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는 주장조차 제기되고 있다.
-만약 소비주의의 내재적인 경로가 지속적인 폐기나 소모의 과정으로 이어진다면 소비사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낭비란 그 과정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낭비를 통해 사람들은 재충전하며 쾌락을 획득한다.
#역동적인 노화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낭비가 오락의 수준으로까지 격상한다.
-그러나 가장 눈에 잘 띄고 지속적인 낭비의 미화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스타일과 포장술에서 찾을 수 있다.
-20년대초가 되자 광고산업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것들의 과정에서 파괴자이면서 창조자로서”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광고인 에른스트 엘모 캘킨즈는 포드의 제1경쟁사였던 셰빌레사가 ‘기계적인 효용성에 디자인과 컬러’를 덧붙임으로써 저가 자동차 생산시장을 상당량 잠식했음에 주목했다. 캘킨즈는 포드의 경우를 교훈으로 삼아 스타일의 문제를 단순히 사업안건에 추가하는데 그치지않고 사업적 성공의 열쇠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지속적이고 방법적인 스타일의 변화를 도모하는 사업전략을 명확히 천거하기 시작한다. 1930년에 쓴 <근대적 공공성>에서 캘킨즈는 자신의 전략을 예외적으로 직접적인 단일 문장으로 축약한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구형 만년필, 주방기구, 목욕탕, 자동차 등에 싫증을 내게 만드는 것-유행이 지나가버린 낡은 것이라는 이유로-이 목표이다. 이런 사고를 가리키는 기술적인 용어가 노화주의obsoletism이다.
-1930년대에 경제공황이 기업의 판매경쟁의 잔혹함을 강화함에 따라 캘킨즈의 착상의 최고의 원칙이 되었다. 로이 셸던과 에그몬트 애런즈는 1932년 <소비자공학>에서 근대적 조건이 의미의 재정의를 요구했다고 주장하였다.
-셸던과 애런즈에게 이제 “노화는 적극적인 동력으로”,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자원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었다.
-셸던과 애런즈는 특히 이런 식의 전개과정에서 대중매체가 하는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것에 열광했다.
#상품과 기억
-헨리 드레퓌스는 새로 디자인한 상품조차 어떤 방식으로든 전에 있던 상품과 기억들은 불어일으켜야 한다고 보았다.
-성공적인 상품판매는 디자인의 그 능력, 즉 사실상 그 디자인이 대체하려 했던 것에 대한 상징적인 복원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에 의존한다고 드레퓌스는 주장했다.
-다소 다른 관점에서 J. 고든 리핀코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효과적인 포장 디자인은 ‘기억가치’라는 요소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레이몬드 로위는 기업체 상징물의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작업을 회고하는 글에서 이와 유사한 어조로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타입들 다수-엑손, 셸, 비피 등 석유화학제품, 나비스코,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그리고 코카콜라의 근대 최신형-를 만들어낸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시각적 기억보존물에 관한 우수한 색인집을 찾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로고타입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심지어 흘낏 본 사람조차도 그것을 결코 잊지않기를, 아니면 최소한 그것을 ‘천천히’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품 및 그 제품을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들이 대중의 기억에 고정되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광고와 선전에서 결정적이다.
-반문화적 경향들이 때때로 스타일 산업을 기습하기도 했다. 60년대 그리고 그 이후의 다른 시기에도 대안적인 하위문화의 발생은 저항적 스타일-언어표현, 옷입는 방식, 음악, 그래픽에서-을 유포시켰는데 특히 그것은 전통적으로 스타일 소비대중 가운데서 가장 뒤처진 그룹으로 여겨졌던 젊은층을 사로잡았다.
-마찬가지로 1970년 1월 환경운동이 시작되자 그 언어의 시장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향후 10년간 철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뜨거운 단어는 환경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윤, 판매, 선전을 소매하는데 핵심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역설적이게도 소비경제에 필수적인 오염과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것의 일부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그 단어는 이제 보다 많은 소비, 보다 많은 쓰레기를 선전하느네 일조하는 하나의 미끼로 취급되었다.
-의미를 도용하여 ‘상품화’할 수 있는 능력은 스타일 시장의 지속적인 특징이다. ‘펑크’가 1970년대에서 1980년데 사이, 분노한 사회적 선언으로부터 의상 스타일로 변질되었던 과정은 좋은 사례를 제공해준다.
-이미지는 또한 우리에게 과거를 보는-해석하는 것이 아니라-한 가지 방식도 제공해준다.
-과거 역시 판매 가능한 스타일로 회생한다. 1980년대에 세 번이나 재활용되었던 ‘60년대’는 핵심사례들을 제시해준다.
-그러나 문화의 쓰레기더미에서 부활시킨 이미지들을 수집한 것이라 할수있는 그 고상한 가치들은 그자체로 상품, 곧 구매되어야할 어떤 것 이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교환가치로서의 가능성 때문에 재생된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 수집한 과거가 매력적이긴 하나 공허한 판매전략의 형태로 그들에게 되돌아옴에따라 역사는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역사적 기억이 파괴되어버린 미래세계를 묘사한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스타일 시장의 파사드 너머까지 조망하지 못하는 한, 오웰의 경고는 여전히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이 미래를 조종한다. 또 현재를 조종하는 사람이 과거를 조종한다.”
결론 스타일의 정치적 요소
(명백한 진리의 표시로 보이는 사실들이 실상은 진리를 부정한다. ... 진리는 그 사실들의 파괴를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허버트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이미지 관리’는 수익성높은 사업이 되었으며 동시에 상업, 산업, 정치 및 인간 상호관계 영역에서 사실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스타일이 필수적이며, 나아가 지배적이기까지 한 요소가 되어버린 또다른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공식적인 연설에서 찾을수 있을 것이다.
-도로시 사르노프는 ‘스피치 다이나믹스’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지 컨설턴트이다. 사르노프는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청중의 8%만이 연설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42%는 연설자의 외모에 그리고 50%는 연설자가 말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움직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장술”이라고 사르노프는 주지시킨다.
-크리스찬 디오르는 1986년도 광고에서 스타일은 “꿈에서 비롯되며 꿈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렇듯 근원적이고도 무의식적인 종류의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에 스타일은-정보의 한 형태로서-사고를 방해하게 되는 것 같다.
-허버트 쉴러는 이른바 새로운 정보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보에 대한 대중적 접근이 점차로 줄어드는”이었다고 주장해왔다. 확실히 지난 20년간 우리는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전달하기 위한 수많은 혁신적인 기술과학의 출현을 목도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 경제, 과학, 기술 정보들의 출처-예전에는 대부분 공공 도서관이나 기록보관소에서 찾을 수 있었던-는 상업자본의 영역, 곧 수집, 포장되어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판매됨으로써 이윤을 남기는 영역으로 점차 넘어가고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정보에 대하 접근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면 스타일을 갖춘 정보의 밀물은 점차로 거세지고 있다.
-텔레비전뉴스만큼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없다.
-진실은 외관의 유희를 넘어서 시장의 힘에 지속적으로 종속당해버렸다. 시청률 순위조사 시스템은 해당 광고에 부과되는 광고료를 결정한다. 그것은 뉴스프로들이 시청자들의 대규모 ‘시장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에 견주어 그 정보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확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과정에서 정보는 info-tainment로 넘어가게 된다.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생겨난 뉴스는 순위를 매기는 게임을 통해 드라마이자 스릴러이자 엔터테인먼트로 변질된다.
-화보중심의 신문과 잡지가 발달함에 따라 매체들 각각은 정기적인 오락거리들에 대한 정보들로 채워지게 된다.
-투표권이 유산계급을 넘어서서 확산되기 시작한 앤드루 잭슨의 집권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정치적 스타일을 만드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지배엘리트들의 객관적인 권력 및 이익과 다른 한편으로는 부상하는 대중의 민주적 열망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페센은 다양한 자료들은 요약하여 잭슨시대에 탄생한 근대적인 캠페인 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선전선동이 관행으로 정착했다. 평균적인 남성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그 정치가는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누더기를 걸치고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받았던 최고교육은 숨겼던 것이다.“
-1950년대 이후로 계속하여 더욱 발전해온 소비문화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선거정치는 선전, 소비할 수 있는 시장품목을 하나 더 늘리는 셈이었다.
-미디어 컨설턴트 영역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들 대부분은 애초에 상품판매의 영역에서 발전했던 기술들이 이제 정치적 영역에서 응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중 정치학은 점점 이미지 마케팅에게 그 지위를 이양한다.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 경력이야말로 가장 명백하게 이것을 보여준다. 1947년 에드워드 버네이는 근대의 대중매체 사회에서 정치적 선거인들을 양성해내는 일은 체계적인 ‘합의의 기술공학’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는 정치가 순수한 홍보문제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대변한다. 모든 사회적 쟁점들은 인식의 문제로 축소시킴에 따라 사회적 쟁점들의 선언은 인식 차원의 일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변화 대신 이미지의 변화가 존재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