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장성민
1.김정일은 누구인가
세계 파워 엘리트에 오른 김정일
-<뉴스위크> 2008년 세계최고의 파워 엘리트 50인 중 12위
탁월한 선전술의 이면
-42년 2월 16일생
-1992년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조선인민군 장병에 영광 있으라”고 짧게 한 발언이 공식연설의 전부
철저한 후계자 수업과정
-대학 졸업후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시작
-1967년 선전선동부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식 후계자 지명
-김일성 학력은 중학교 2학년
의외의 인물 김정일
-엄청난 독서광; 조선노동당 고위간부 출신 신경완 증언
-황장엽; 당과 군 완전 장악, 정치적 수완, 미국과의 관계에서 두뇌회전 빠르고 이해관계 계산하는 능력 출중
능란한 외교적 수사력
-상대방이 긴장하면서 약간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화법으로 주도권; 2000년 남북정상회담
-평소 학습이거나 아니면 철저한 준비
치밀한 전략가의 두 얼굴
-새벽까지 보고서 체크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그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기 힘들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취재 기자 평가; “첫 날 모습은 원맨쇼... 대단한 카리스마... 아는 게 많았다... 사람을 장악할 줄 알고 자신의 계획대로 몰고 나갈 줄 안다는 것이다.“
2.김정일은 건강한가
동북아 지정학의 뇌관, 김정일의 건강
김정일 건강악화의 주원인
-술; 조니워커 스윙과 헤네시 XQ
-술친구 김용순 2003년 10월 26일 비밀파티 후 교통사고 사망
-황장엽 증언; 김용순 가까이 하지 말라는 김일성의 충고
-김일성 사망 후 절주
-2000년 남북정상회담; 보르도 또 부르고뉴 와인 좋아한다, 50세 이전에 술 많이 마셨다.
-황장엽 증언; 술파티에서도 맹물만 마셨다.
불안정한 병상통치
-85년 소련 대사 보고서; 김일성 일가는 신장결석 체질
-흡연으로 쉰 목소리, 금연
-운동부족; 즐기는 스포츠는 사격, 승마, 사냥
무리한 현장지도
-과도한 피로
-여운형 둘째딸 여연구; 공화국에서 가장 늦게 자고 가장 일찍 일어나는 분
-64년 6월부터 99년 6월까지 35년간 3,900여일 7,400여 단위 현지 지도
연평균 111일, 211개 단위 지도한 셈
-현장지도로 민심과 군부 불만 다독여
김정일 이후, 가능한 시나리오
3.김정일의 후계자는 누구인가
태국의 왕조체제를 꿈꾸다
-2001년 10월 올브라이트 접견 시; 나는 태국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물림보다는 왕조체제 구축-60쪽
당과 군부의 파워게임
-군부의 영향력 확대; 80년 이후 노동당 전체회의 무, 중앙위원회는 93년 12월 이후 무
-‘김정일 절대 지배를 특징으로 한 선군형 독재체제’로 변모 중
-전당후군부 협력체제
-군부의 치명적 약점; 통치능력, 정통성 부족
김정일 권력대행자는 누구인가
-매제 장성택
-2008년 아프리카 여행하면서 김정남과 후계구도 논의
-유교적 장자 상속사회 정치문화; 김일성 후계자에서 배제된 차남 김평일과 삼촌 김영주
김정남은 친중국 개방파인가
-성혜림; 장남 김정남 72년생?
-김영숙과 74년 결혼; 설송 등 두 딸
-고영희; 김정철, 김정운, 김여정
-김정남 어린 시절 남한 TV 시청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 유학, 북한 출신으로 자본주의 국가에 유학한 첫 번째 인물
장성택도 동행
-모스크바 프랑스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학교 생활
-스위스 국제종합대학 졸업, 프랑스어 영어 유창
-김정일이 김정남 외유시킨 두 가지 이유; 1.불필요한 권력 다툼 배제 2.자신의 통치력 약화 배제
-김정남 2001일본 밀입국; 이라크 미사일 판매 대금 수금
-마카오 거주; 2005년 9월 미국이 BDA 2500백만 달러 김정일 통치자금 동결하고 2007년 3월 14일 조사 종결할 때까지 김정남 역할
-2007년 6월 노동당 조직지도부 일
-2007년 2월 베이징서 후지 TV 인터뷰, 신분은 노동당 39호실 산하 ‘조광무역 총책임자’
-김정일 통치자금 마련하는 외화벌이 총책임자-81쪽
김정일의 아바타 김정철
-81년생
-김영숙과 결혼한 지 2년 만에 고영희 만나 76년부터 동거
-94년 김일성 사망 후 성혜림 우울증 후 영향력 커져
-외모는 김일성과 닮아
-2004년 5월 26일 고영희 사망
-동생 고영숙, 남편 박건과 98년 미국 망명; 교통사고의 배후에는 김정남-87쪽
-김용순 2003년 6월 16일 고영희 생일날 교통사고; 제거 음모설
-고영숙; 김용순 91년부터 고영희에 충성 맹세
-2000년 기점 김정남 파워 고영희 세력이 견제
-장성택 대외활동 2003년 7월부터 중단, 2004년부터 직무정지, 2006년초 복귀
-김정철; 93년부터 98년까지 베른 국제학교 졸업
장 클로드 반담, 데니스 로드맨
‘나의 이상세계’라는 시-범죄와 빈곤이 없는 곳
-김정일의 나쁜 평가, 김정일이 가장 마음에 둔 아들은 김정운-후지모리 겐지 요리사
-2001년부터 2006년 4월까지 김일성 군사종합대학교 특설반
김정일 빼닮은 샛별장군 김정운
-84년 9월 25일생
-베른 국제학교 졸업, 김일성 군사종합대학
-김정일과 닮아, 운동부족 비만, 고혈압, 당뇨
-김정남에 대한 견제의식
-베일 속 김정일; 1. 연소자 2. 김정일의 보호
떠오르는 장성택, 개혁개방의 설계자인가
-46년생
-김정일 동생 김경희의 적극적 성격과 역할
-김정일도 유일한 혈육인 김경희를 아낀다
-95년 당조직지도부 부부장
-큰 형 장성엽 김정일 개인교수, 둘째 형 장성우 평양방어 3군단장, 셋째 형 장성길 인민군 중장, 매제 전영진 주 스웨덴 북한대사관 직원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주도적 인물
-2007년 10월 신설 당 행정부장 임명
-김정일을 대신할 수 있는 상징적인 복심 필요
-김정남 후계 이유; 1.고영희 아들들 보복 우려 2.김정남 어머니 성혜림에 대한 보은
-두 번의 실각으로 등소평과 닮아-120쪽
4.김정일은 외교의 천재인가
총을 든 선군외교
-지정학적 위치로는 체제 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도움, 핵무기로는 주권침탈 방지
우리식대로의 주체외교
-외교 스케쥴은 생명스케줄로 최대의 비밀로 간주
-상대국을 긴장, 당황케 만들어 정상외교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는 계기
-93년 3월 NPT 탈퇴-자신의 프레임워크에 따른 외교행보
전략적 파격외교
-군사작전식 전시외교
처칠“전쟁보다는 외교로 싸우는 게 낫다”, 주은래“모든 외교는 다른 수단들로 벌이는 전쟁의 연속” 현실화
-협상이란 곧 김정일의 명령과 지시를 이행하는 또다른 시도
-‘전사형 협상태도’는 서방국가의 ‘상인형 협상태도’와 대비
-군부의 외교적 위상 강화
기선제압협 압박외교
-전쟁과 외교라는 상충되는 개념을 하나의 틀로 전시외교 펼쳐
-군사적 위기조성, 기선제압, 협상이슈 선점, 상대 프레임 무효화, 극적 타결 5단계 과정
-94년 3월 ‘불바다’ 발언
-평양에서 내린 명령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시간을 끌면서 협상 지연
-2006년 미사일 시험발사, 핵실험으로 2007년 9.19 공동성명으로 극적 타결
-군사력 동원은 전쟁행위라기보다 또다른 형태의 외교행위
직선형 통큰 외교
-김정일 공식 외교무대 등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선적 성격과 즉석 결정
5.북한은 왜 핵을 포기하지 않는가
북한 핵과 체제 유지의 딜레마
-체제유지의 비법 중 하나는 핵무기 보유
구 소련과 북한 핵 개발
-50년중반부터 소련의 지원
-70년대 김일성 핵무기 개발; 남한과의 경제력 격차가 주원인
-구 소련과 중국의 대북한 정책에 대한 불신도 핵무기 개발 요인
-남한과의 전면전은 불가능-169쪽
식량과 석유 부족 때문
-핵개발은 군사력 균형 위해; 올브라이트 장관과의 대화-175쪽
-국방비 감축을 통해 체제붕괴를 막겠다는 동기
냉전체제의 해체와 북핵
-89년 동구권 붕괴, 중국 시장주의 선회, 구 소련 해체로 핵무기 보유에 강한 집착
-94년 1차 핵위기도 계기
북핵, 대반전의 카드인가
-2001년 아프간전과 2003년 이라크전도 북한 핵무기 개발에 탄력
-2003년 6월 미의회 대표단 방북 때 북한 관리들; 핵무기 제조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184쪽
-미국의 선제공격 노선이 김정일 핵무기 전력투구 유인
성공적인 북핵 외교해법
-핵무기 보유는 체제 유지의 알파이자 오메가-187쪽
-해결책은 핵무기와 같은 수준의 ‘외교적 대체재’로 북-미 정상회담 통한 일괄타결-187쪽
6.김정일 이후의 북한 어디로 가나
북한은 붕괴하는가
벼랑 끝에 선 김정일 체제
-식량위기로 인한 리더십위기가 체제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미연에 막고자 한국과 서구 국가들로부터 식량원조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식량원조는 ‘독이 든 당근’
개혁개방, 토로이의 목마인가
-경제적 체재 개방으로 동독과 같은 수순 우려
-특구형 개혁개방정책은 효과 의문
또하나의 핵폭탄, 김정일의 건강
왜 북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가
-체제 붕괴와 국가 붕괴는 차이
-붕괴의 충분조건 부재; 수령체제 도전 사상 부재, 단일 민족 공동체, 반동세력 부재, 리더 부재, 대안체재 부재, 군사쿠데타 불가능, 식량위기는 붕괴와 무관, 남침 전쟁 가능성 희박
-김정일 이후 점진적 체제 변화 시나리오
7.김정일과 미국
배짱외교의 겉과 속
-김정일은 미국은 매우 두려워 한다
-‘통 큰 행보’와 ‘배짱’은 미국의 관심 끌기
‘악의 축’과 ‘폭군 중의 폭군’
-이라크전 당시 김정일 중국 국경 근처 은둔
미국의 ‘선제공격’과 북한의 ‘선군정치’
-냉전,동맹 체제 붕괴 후 미국의 위협 인식 강도 높아져
미국의 ‘김정일전략연구소’
-미국의 군사공격에 대한 공포와 심한 피해망상증
미국 타도와 타협 사이에 선 김정일
-미국과의 관계 개선 위한 김정일의 노력은 실패의 연속
조명록이 군복을 입고 백악관에 간 까닭은
-전시관계 상징하면서 대미관계 정상화 의지 표출
-주한미군 유지 김정일 발언
북미관계 정상화화 북핵카드
-미.중 경쟁 속 줄타기 외교;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 활용
-북.일 수교 배상금
-남한의 지원과 러시아 에너지 지원 겨냥
8.김정일과 중국
소용돌이치는 북.중관계
혈맹관계의 종언
중국은 북.미 간의 정직한 중재자인가
-94년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 새 한국전 피해 전망; 미군 사망자 8-10만명, 한국군 사망자 수십만명, 전쟁비용 최저 5억달러 최대 1조달러
-영변 선제공격 불가 결론
대중국 편승외교전략
-아버지 부시와 키신저가 북한 핵문제에 중국이라는 지렛대 활용 조언
-부시행정부 대중 정책 ‘전략적 경쟁자’에서 ‘전략적 협력자’로 변경
-북한의 보이지 않는 대중국 편승외교 전략
중국을 위협하는 북핵
-북한핵은 중국의 ‘파워감축’ 요인
-소수민족 독립운동 자극
-미국과 일본의 중국의 뒷마당 접근 명분
-북한핵은 북.중 국경 분쟁에 불리
-한국,일본,대만의 핵보유는 중국에 재앙
-북한 체제붕괴의 후유증으로 경제성장 걸림돌
북한을 압박하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중국의 개방과 북한의 주체는 상충
김정일의 후계승계를 반대했던 중국지도부
-김정일은 중국을 싫어한다;황장엽
-모택동 반대, 등소평 마지못해 찬성
-북.중 갈등 누적; 대만 핵폐기물 처리, 대만과 직항로 거론, 황장엽사건 등
‘양빈사건’과 북.중 갈등의 심화
-주룽지 총리 신의주 특구 반대로 개성공단 추진
-김정일; “역시 중국 사람들은 믿을 사람들이 못됩니다.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대북제재 국면을 둘러싼 중국의 반북행보
-안보리 대북결의안 1718호 찬성
-북한핵의 중국 위협 억제 측면 강화
핵을 가진 북한은 미.중 공동의 적인가
-중국 견제 위해 미국 유인 전략 강화
-김정일; ‘통일 이후 미군 주둔 괜찮다.“
-미국.중국 북핵 포기 긴밀한 협력; 일본의 핵무장 방지 목적
9.한반도 영구평화의 조건
동북아 안보의 블랙홀, 북한 핵
-한-중, 한-소 수교 후 북한 핵무기 개발 가속화 추정
-동북아 핵무기 열대화, 핵확산 도미노 현상-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인가?
북핵 도미노
-일본 핵무장 압력 막기 위한 미국의 북핵 폭격 가능성
미국 외교의 대실패, 북한 핵
-94년, 2002년, 2007년 위기
북핵문제와 힐러리 클린턴 변수
-오바마 ‘힘의 대화’
오바마.김정일 정상회담과 북핵위기 5단계 해법
-미국의 옵션;
1.핵보유국 인정-핵물질 노출-군사공격 명분 확보
2.직접대화; 5단계 해법; 특사-실무급 회담-정상회담 개최 발표-6자 정상회담-UN 집단안보체제
맺음말
‘불완전한 평화’를 넘어 영구평화의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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