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6일 월요일

What happened


What happened
-Scott Mcclellan

1.A Made-for-Washington Scandal
워싱턴 정치문화-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파적 사고와 행위

2.A Small Part of Something Grand
98년 부시 주지사와 만남
정부정책은 결과로 판명된다는 신념
지도자의 성공에 따라 국민은 판단하고 역사는 기억한다

3.Growing Up in Politics
할아버지의 교훈
직업적 성취보다는 가족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돈보다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취
정치에서 반대가 없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

4.Governor Bush Runs for President
선거운동은 “조직된 혼란”이고 대통령 선거운동은 더 큰 규모의 “조직된 혼란”-45쪽
코카인 복용 사실에 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시의 정치적 편의주의에 대한 의심
위증보다는 모른다고 대답하는 편이 안전한 법정에서의 증인과 마찬가지
정치적 원칙-논란이 있는 후보자의 과거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자신의 용어로 공개
플로리다 개표 논란 때 모든 카운티의 수작업 개표를 주장하지 않은 것은 고어측의 실수

5.The Permanent Campaign
-1.선거정치
The Permanent Campaign and Its Future-Norman J. Ornstein of AEI and Thomas E. Mann of Brookings Institution, 2000,7
"정부 자체의 행위에 개입해 여론의 지지 원천을 조작하려는 중단 없는 과정“
닉슨 행정부가 백악관에 제도화한 첫 사례
-2.현재 미국의 정치환경을 형성하는 두 번째 지속적인 스캔들 문화
Shadow-Bob Woodward
-3.세 번째는 정치전쟁
Scandal-Lanny Davis; 64년의 공화당 뉴라이트와 그 후 민주당 뉴레프트
언론도 주역 가운데 하나
부시의 정책은 anything but Clinton 이지만 중단없는 선거운동은 클린턴과 닮아
4개의 정치적 참모 조직
50 더하기 1% 정치-자신의 지지층을 공고화한 다음 중간층과 상대층 공략
주지사시절 부시의 행보와는 딴판
외교정책은 Vulcan(불과 철 작업을 주관하는 로마의 신으로 콘디 라이스의 고향 앨러배마 버밍햄의 상징)group
선거정치의 중심은 칼 로브, 카렌 휴즈, 앤드류 카드

6.The Early Days
의견 일치할 수 있는 방식의 의견 불일치 희망
대통령 공식 일정을 일주일 단위의 주제에 맞게 조정
앤디 카드 비서실장 백악관 참모의 3가지 핵심 의무-94쪽
-1.대통령 보좌, 지원
-2.규율 있는 정책 형성 과정
-3.대통령 정책의 효과적인 마케팅
정책 마케팅 총책은 칼 로브
정치와 정책의 혼재 불가피

7.September 11 and The Partisan Ceasefire
대통령의 첫 발언 ‘apparent' 테러 공격 조언-102쪽
9.11 이후 부시를 괴롭힌 것은 앤쓰랙스 공포-108쪽
중간선거에 전쟁을 이용하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칼 로브-112쪽
부시행정부의 비밀주의

8.Selling the War
2002.9.16 유엔연설
이라크전쟁 합리화 사전 준비 운동
수석경제보좌관 Larry Lindsay 이라크 전비 1000-2000억 달러 발언-121쪽
미디어의 공범 역할; 복잡하고 중요한 이슈를 흑백논리의 편리한 7초 발언으로 단순화
2001.11월말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에게 이라크 전쟁계획 재검토 지시-Bob Woodward
부시의 중동민주화 비전-2002.1 ‘악의 축’ 신년연설
부시는 이라크 전쟁에서 위대한 업적의 기회를 포착-131쪽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합리화하는데 그런 비전보다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연계를 내세워
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변호사처럼 유리한 변론에만 치중
2002년 여름 선제공격론
2002년 10월 의회 군사력 사용 허용
2002년 11월 중순 유엔결의안 1441호
부시가 이라크 전쟁의 막대한 희생규모에 대해 사전 조언을 들었다면 그런 결정 내리지 않았을 것-144쪽
부시의 기질(지적인 토론보다는 본능에 의존하는)도 문제-145쪽

9.Becoming White House Press Secretary
백악관 안보, 홍보 고위급 회의서 배제
비밀주의와 언론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
앤디 카드 비서실장 언론은 또 하나의 ‘이익 단체’ 발언-155쪽
부시도 언론은 필요악이거나 귀찮은 존재로 인식
주류언론 역시 전쟁의 필요성보다는 전쟁 행진곡 연주
옛말 “힘든 사람을 편안하게 편안한 사람을 힘들게”
클린턴 대통령 당시 Mike Mccurry 대변인의 명성

10.Deniability
대통령 보호하기
리크 게이트
2003.6 뉴욕타임즈 Nicholas Kristof 칼럼
6.12 워싱턴 포스트 Walter Pincus 반박 기사
7.6 Joe Wilson 의견 기사
7.14 Novak 칼럼
CIA George Tenet 국장 백악관 요구로 책임 인정-172쪽
Hadley 안보보좌관 책임 인정
9.27 칼 로브 Novak과의 통화 실토(2003.7.11 타임의 Matt Cooper 기자와 칼 로브 통화)
9.29 부시 대통령 칼 로브에 대한 언급, 카드 비서실장 조심 권고
백악관 기자 브리핑

11.Betting the Presidency
워싱턴 미디어의 속성; 대통령 인기가 높을 때는 우상화, 낮을 때는 물어뜯기
전쟁 행진곡 연주를 한 잘못을 뒤늦게 보상이라도 하듯이
정치적 속설;“방어는 패배”
대량살상무기에서 대량살상무기 계획으로 초점 변화
2004년 부시 대통령 NBC Tim Russert와 회견; 선택한 전쟁인가 불가피한 전쟁인가
부시 실패 인정 거부 요인;
-1.나약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2.실패를 인정할 때의 개인적 고통
-3.정치적 승리에 대한 집념
-4.정치적 지지층 상실에 대한 불안
이라크전쟁의 부시의 첫 번째 실수 두 번째 실수는 실수의 인정 거부-210쪽

12.Brush Fire
2003.10.4 비서실장 Scooter Libby도 방어하도록 지시

13.Triumph and Illusion
백악관 참모 교체 필요성-240쪽
새로운 피의 활력, 참모들의 피로 등 요인
적절한 시기가 문제, 앤디 카드 비서실장 ‘떠나는 시기’가 가장 중요
부시 참모들의 충성심, 참모들에 대한 부시의 충성심-242쪽
부시의 인간적 매력이 인간 관계나 정책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거부로 약점이 되기도
부시팀의 국무부 불신
파월의 국무부 관료들에 대한 신뢰와는 달리 라이스는 PR의 귀재
라이스는 부시에 대한 조언보다는 부시의 본능적 심기를 읽는데 치중
럼스펠드에 대한 부시의 존중
곤잘레스 법무장관 인선 잘못
칼 로브 역할 공식화; 정책담당 부 비서실장
마법의 인물 체니 부통령-247쪽
소셜 시큐리티 정책 홍보 실패

14.Revelation and Humiliation
대변인 속이기라는 신뢰의 위기
아리 플라이셔 대변인 이용-263쪽

15.Out of Touch
카트리나 허리케인 대응 실수
피해 현장 수습 작업에 대한 정치적 이용 거부-276쪽
기타 치는 부시 사진-279쪽
상황에 장악당한 잘못
수해현장 상공 비행기 안 부시 사진의 아이러니-282쪽
지도력의 함정; 강력함과 부드러움의 불일치
부시는 강력함을 택함으로써 현장의 목소리와 멀어져
상원의원 별장 피해지 방문, 연방방재청장 격려-288쪽
라이스 장관 뉴욕서 구두 쇼핑
언론의 초기 이미지 중요성-289쪽
부시행정부의 위기 대응능력 과신
대응과 예방 실패에 대해 인정 거부로 일관한 잘못
나중의 부시행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

16.After the Trial
2006.4.26 부시의 NIE(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 비밀 일부 해제 지시 시인
부시는 당시 체니 부통령과 협의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부시의 비밀주의의 결과
2006.3.28 앤디 카드 비서실장 사임 발표
부시 면담 사직 논의, 대통령과 신임 비서실장이 부인에게 전화
아미티지 국무부 차관이 리크 게이트 첫 발설자, 칼 로브는 두 번째 확인 소스
로브와 리비, 아리 플라이셔 대변인 등 3명은 노박의 기사 이전에 비밀요원 신원 노출
리비가 대변인 활용하고 후임 대변인도 악용
선거정치의 불행으로 결론

17.Changing the Culture of Deception
선거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닮은 꼴
대통령의 할 일
-1.투명성
-2.통합노력
-3.좌우 중립적 차원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공통분모 도출 필요
이를 위해 새로운 비서실 차장 직책 필요-316쪽
당파적 선거정치에서 충성심도 문제
언론의 문제-321쪽
경마 저널리즘, 논쟁의 재생산

피스메이커


피스메이커
-임동원
1.세계가 놀란 남북정상의 극적인 만남
1장 김정일 위원장과의 첫만남
#정치를 모르는 국정원장
#야당의 극찬
#현대, 요시다, 그리고 박지원
-박지원이 현대 이익치에게 정상회담 주선 극비 요청
#비밀특사회담
-김대중 대통령 1억달러 지원 입장, 미실현
-4.13총선 전 정상회담 발표
#미국의 귓속말
#현대의 무리수
-7대 경협사업 대가로 4억달러 지불 합의
#평양 168km
-특사로 방북, 김일성 유해 모신 금수산궁전 방문 일정 논란
#김정일과의 첫만남
-신의주 근처 김정일 특각, 5/29-31 김정일 중국방문
-김대통령; 정상회담 후 금수산궁전 방문 입장
-김정일; 보안 문제, 평화유지 목적 주한미군 주둔 인정, 금수산궁전 방문 강조
#유머감각이 풍부한 김정일 위원장
-붉은 포도주
-남쪽 민주주의 잘 이해되지 않는다
-김일성 사망 시 김영삼 대통령 비상경계령 비난
-김정일 서울 방문 시 박정희 대통령 묘소 참배 의사
-영화 ‘축제’ 칭찬
-미국과 관계개선 의지 표출

2장 남북정상회담
#반세기 만의 만남
-1시간 정도 카퍼레이드
-김정일 모순 발언
#금수산궁전 조문문제
-김대통령 정치적 입지 설득, 일부 기자단 취재 불허 문제 평양서 해결
#태극기와 인공기
-김정일 인공기 파문, 국가보안법 폐기 주장
#김 대통령의 4대 아젠다
-김대통령, 3년상 김정일 효도 언급
#연합제 vs 연방제
-김대통령 실천 과제 합의, ‘열린’ 자주 강조
-연합제는 군사,외교권 가진 주권국가들의 협력형태
#핫라인
-김정일 탈북자 문제, 비방 중지 거론
-정상 간 비상연락망 설치, 유지
#전라도 위원장과 경상도 대통령
-김정일; 92년초 김용순 미국 방문 시 미군 주둔 요청,
미군철수 주장은 인민들 달래기 위한 것,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고, 한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는 사람도 없는 법...”-118쪽
#마침내 맞잡은 두 손
-김대통령 만찬사 뒤 김정일 대신 김영남 답사
-김정일과 국정원장 금수산 궁전 방문 취소 관련 귓속말 언론 비난 초래
#한 송이 꽃 들고
-김정일에 대한 인상 교정,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인물
-김대중 좌뇌, 김정일은 우뇌
-남북정상 11시간 직접 만남

2.탈냉전의 새로운 남북관계 모색
3장 피스키퍼에서 피스메이커로
#평화를 지키는 군인의 길
#자주국방의 설계사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제는 ‘통일전문가’로
#왜 피스메이커인가
-자살적 공격능력 북한 과소평가 안되지만 과대평가는 더 큰 문제

4장 남북고위급회담
#냉전종식의 서막
#“남녘사람은 처음입네다.”
-상대방 인사에 대한 정보 부족
#서울에서 만난 남북 총리
#하나된 둘인가, 둘이 된 하나인가
-국제정세 변화, 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평양의 통일열풍
-대표단 가족상봉 논란
#지연전술
-북측 정상회담 거부, 남측 지연전술로 조기타결 바라는 북측 압박 -201쪽
-91년 10월 김일성 방중; 등소평 개혁.개방, 남북협상 조기타결, 핵의혹 해소 권고
-북한, 미국과 관계정상화 위해 핵문제 활용 ‘전략적 결정’ -205쪽

5장 화해협력과 비핵화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결하려는 의지’ -208쪽
-북측, 비핵지대화 선언 긴급 제의 210쪽
-8개 쟁점조항 중 북측 거부
평화협정-미국과 체결 주장
해상경계선-NLL 거부, 국제해양법 12해리 영해 주장
불가침보장조치
-남한 언론, 북핵 의혹 증폭
-5차 고위급회담 앞두고 남한측 입장 정리; 핵문제 연계 대신 병행, 정상회담 분리,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고려
#“도장 갖고 왔다.”
-북측, 합의서 채택 후 핵사찰,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제기
-처음으로 마이크 없는 협상 -221쪽
#남북기본합의서
-북측 제의로 심야 접촉
-91년 12월 13일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합의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91년 2월 걸프전 직후 북한 핵 의혹 표면화
-북한 85년말 NPT가입
-고르바초프 등장 후 핵안전조치협정 조인과 핵사찰 수용거부
-91년 미국 전술 핵무기 철수 및 폐기 선언
-미국과 협상추진 방침 합의
재처리시설과 농축시설 포기에 우선 순위
남북 간 상호시범사찰 시실
핵사찰 조속 수용 촉구
강제사찰제도 확립 희망; 국제원자력기구 핵사찰은 ‘민간시설과 물질’ 그것도 ‘신고된 것’에만 한정돼 ‘군사시설’이나 ‘신고하지 않은 핵물질 및 핵시설’에 대한 사찰 불가능 맹점
미 핵무기 철수와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댓가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북한 국제핵사찰 수용
-남북상호사찰 합의 실패; 북미 직접협상 위한 지렛대 활용 속셈 -238쪽
#벼랑끝 전술과 제네바합의
-92.1.22 북미고위급회담
-92.5.4 북한 보고서 제출; 실험용 원자로 외 2개 원자력발전소와 핵재처리시설(방사능화학실험실) 건설 중, 특히 플루토늄 90그램 추출
-93년 3월 북한 NPT탈퇴
-94년 봄 제1차 북핵위기
-94년 10월 제네바합의
#김일성 주석과의 대화
-92.2.19 평양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통해 남북기본합의서 정식발표
-납북합의서는 국제적 조약이 아니므로 국회 비준 불필요하다는 논리
-김일성; 일본친구 우쯔노미야 도꾸마 의원 쏘가리회 등 음식설명
관광 외화벌이 눈치, 금강산 관광특구 개발 남한 기업 참여 희망
김우중 회장 같은 사람 다섯 명만 있으면...
정주영 회장 당수 노릇하는 것이 장사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텐데...
서울의 설렁탕이 맛있다던데... -253쪽
-김우중 등 직접 접촉 통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생각 변화 중요 -254쪽

6장 냉기류를 만난 남북관계
#‘소극론’의 대두
-국내정치가 남북협상 발목
-보수언론; 북한 핵무기 보유 단정하며 핵문제 해결없이 관계개선 부정 주장 -258쪽
-남북대화보다 남남대화가 어렵다
-서동권 안기부장 이상연 교체와도 관련
-안기부 북한정보와 북한측 제의 달라
#장기수 이인모의 송환
-북한, 김우중 대우회장과의 남포공단 시업사업 등 추진 희망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이인모 노인 송환 연계 의도
-노태우 대통령 장기수 송환 방침 번복
-남북관계 화해와 협력 사업 성사는 대단히 어려우나 파탄은 아주 쉽다는 사례 -267쪽
#빈손으로 돌아간 손님
-북한 김달현 경제부총리 등 실용주의 테크노크라트 몰락의 결과 초래
-북한 3가지 납북경협사업 제안; 시베리아 가스관, 원자력발전소, 남포공단
#원칙협상
-원칙협상기법<->입장협상기법
#내부방해자
-안기부장 특보, 정치분과위원장 이동복 대변인;
이인모 송환 3가지 협상조건 기정사실화해 언론에 발표
#훈령 조작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개인 차원 사건 축소, 사법처리 없이
#남북대화의 파탄
-92년 선거정국; 남한조선노동당사건, 93년 팀스피리트훈련 재재 결정
-93.1.29 북한, 모든 남북대화 중단 선언

3.화해와 협력으로 전개된 남북관계
7장 김대중과의 만남
삼고초려
첫만남
3단계 통일론
정치참여의 유혹

8장 새 역사의 로드맵
#화해, 협력, 변화 그리고 평화
-적대적 대결정책, 방관정책, 포용정책
-대북정책의 목표; 사실상의 통일상황 실현, 유럽에서 15년 데탕트
-대북정책 3대원칙; 무력도발 거부, 흡수통일 거부, 화해협력
-피스키핑과 피스메이킹 병행
-포용정책은 힘이 있는 강자가 사용하는 공세적인 정책, 부전승전략
#붕괴 임박론
-김영상 정부; 붕괴임박론, 선 핵문제 해결, 후 남북관계 개선, 4-2전략(4자회담 테두리 속 남북관계 추진)
-유종하; 북한 1-2년 내 붕괴 확실시, 미국 대통령안보보좌관 앤서니 레이크 설득해 서둘러 4자회담 마련 -341쪽
#NSC 상임위원회
-경수로 비용 70% 약속; 김영삼 정부, “북한이 붕괴되면 경수로는 우리의 것” -348쪽
-2002년말 부시정부 고농축우라늄계획 의혹 제기로 중단
-한국 11억달러 부담
-대북 식량지원; 정부 직접지원과 민간 인도적지원 적극 권장
#문민정부가 남긴 유산
-남북관계를 북한 핵문제에 종속시키고 북한 붕괴 임박한 것으로 판단한 때문 -355쪽
-김영삼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핵연계 전략, 남북관계 ‘잃어버린 5년’ -356쪽
#판문점을 열어라
-98년 4월초 비료지원 회담, 이산가족 연계 상호주의 시련
-98년 9월초 민화협 정식 발족
-군사정전위원회 대신 유엔군-북한군 장성급회담
#소떼방북과 금강산관광
-금강관광 허가 대통령에 건의, 일종의 모험 -373쪽
#‘영웅’에 대한 예의
-클린턴정부의 붕괴론적 대북시각 변화-한.미정상회담
#새로운 한.일 협력시대
-무라야마 총리 담화; 반성과 사과의 뜻을 밝힌다
-오부치 총리;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오와비)한다.”
#한.중 관계 업그레이드
-협력적 동반자 관계
-중국에 대북 영향력 행사 요청; 장쩌민 주석, “평양주재 중국대사는 김정일 위원장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인지 벙어리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북한 방문 제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387쪽

9장 ‘평화 만들기’
#잘못된 지하핵시설 정보
-98년 8월초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은폐 흔적 없어
-MD 계획 밀어붙이려는 국방정보본부 일부 강경세력이 럼스펠드보고서 뒷받침 의혹
-북한 현장방문 허용하며 3억달러의 대가 요구, 나중에 식량 60만톤 제공하고 현장방문 조사결과 핵시설이 아닌 것으로 확인 -393쪽
#윌리엄 페리를 잡아라
-98년 8월말 대포동-1호 미사일 발사 사건
-북한, 광명성-1호 인공위성으로 명명
-11월 중순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 임명
#포괄적 접근
#페리의 방한
#워싱턴 조율
-정책공조 주도 선례
#도쿄.베이징.모스크바
-일본; 대포동 1호 충격
-중국; MD반대, 선공후득-퍼주기 비난
#유쾌한 표절
#한.미.일 3국공조
-상호위협감소를 통한 한반도 냉전종식
#페리의 방북
-99.9.14 페리보고서 일반 공개 발표
#선으로 악을 이겨라
#연평해전
-99년 5월 북한 비료제공 간청, 6/21 차관급회담 합의
-6.15 연평도 교전
#평화를 위한 결단
-남한국민 신변안전보장; 중국에 도움 청하는 방법, 북측과 가용통로는 현대 뿐
-관광선 출항 허가 대통령에 요청
-긴급상황시 당국간 핫라인 부재; 정상회담 후 해소

10장 새로운 출발
#작지만 소중한 시작
#교류협력의 물꼬
#북의 추석선물
-추석연휴 김용순 서울 방문, 식량 100만톤 긴급지원 요청하면서 회담장 퇴장 사태-485쪽
-국방장관회담, 이산가족문제와 연계로 해결
#“국정원장을 교체하라!”
-2000.9.15 시드니 올림픽 공동입장
#워싱턴의 조명록, 평양의 올브라이트
#무산된 북미정상회담
-미사일 관련 북.미 합의; 2001.3.6 웬디셔먼 뉴욕타임즈 공개
-김정일이 조명록 방미 한 달만 앞당겼으면 클린턴 대통령 방북으로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 -505쪽
#CIA에서의 토론
-CIA국장, 부시는 클린턴과 달리 읽기보다는 듣기, 핵심이 무엇이고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하는 식 - 509쪽
-북한은 중국,베트남처럼 점진적 변화 과정 가능; 고르바초프의 변화도 속임수라는 서방의 평가
-독일의 경우 30여년간 교류.협력, 전쟁을 경험한 한반도의 교류협력은 시작에 불과

4.네오콘의 방해를 헤치고
11장 역풍을 만난 남북관계
#콜린 파월과의 대화
-2001년 1월 김정일 중국 상하이, 7월 러시아 방문
-콜린 파월; 신뢰하지만 검증한다
클린전 정부 정책 계승 발언-523쪽
-임동원; 신뢰는 대화와 합의의 실천 통해, 신뢰를 조성하기 위해 연결
#부시 행정부의 ‘ABC마인드’
-안보위협 해소를 위한 정권교체, 불량국가 봉쇄.압박
-북한의 공갈에 굴복하거나 보상을 지불하는 등 끌려다니는 일 없을 것
-올브라이트 방북은 저자세 외교의 극치
-북한은 신뢰할 수 없다, 붕괴될 것이다, 군사적 위협제거
-콘돌리자 라이스; 전 행정부 정책 신중한 검토 발언-콜린 파월과 다른 입장
-임동원; 한반도 냉전종식시키는 부시 대통령 희망
-외교부 장관 이정빈, 김정일 서울 방문시 정전협정 평화협정 대체 문제 협의 거론해 미국측 오해-530쪽
#‘악당’을 원하는 사람들
-2월말 푸틴 러시아 대통령 서울 방문, 한.러 공동발표문 발표
-MD 추진하던 미국 백악관 청와대에 항의
-3월 김대통령 방미
-네오콘 강경파 한반도 문제 장악; 북한에 대한 외교적 노력 무의미, 미사일방어체제 구축해 필요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
-미국의 요격미사일 개발사업; 6번째 추진, 과학기술과 군수산업 발전 겨냥
-한.미 정상회담 후 언론 반응; 뉴욕타임즈 ‘모멘텀을 잃어버리다’, 타임‘한반도정책, 매파가 장악’, 영국 가디언 ‘애 부시는 악당을 필요로 하는가’
-북한,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면서 남북대화 중단-537쪽
미국의 강경파들과 ‘적대적 공생관계’ 유지라는 중대한 북한의 실책-538쪽
#다시 통일부장관으로
-국내 수구냉전세력이 부시의 대북강경 입장에 부화뇌동하는 상황-541쪽
-이회창 총재와 우여곡절
#네오콘의 함정
-6월6일 부시대통령 새로운 대북정책 발표; 핵관련 제네바합의를 개선하여 이행하는 방안, 미사일계획의 검증가능한 제한방안, 재래식 군사위협 감소방안 등 의제 제시
-북한의 반대는 미국 강경파의 함정에 빠진 것-550쪽
#위기에 처한 금강산
-남북협력기금 직접대출 정면돌파
#평양축전의 ‘색깔’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국회통과
-국민의 정부, 통일문제 정부 독점 대신 민간차원 통일운동 장려 공언
-돌출행동, 색깔칠하기
#무너지는 ‘DJP 연합’
-햇볕정책 전도사의 순교
#북의 세 가지 실수
-남북 반테러 공동선언 채택 실패; 악의 축 명단 제외 가능성 포기
-3차례 호기; 조명록 특사 방문 지연, 김대중 대통령과의 남북관계개선 지연, 9.11 반테러 노력 협조 포기
-남측대표 회의장 퇴장; 협상자는 상부의 훈령 따라야, 명분보다는 실리, 최선책 안되면 차선책으로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574쪽
#부시 독트린
-2002년 1월 ‘악의 축’ 부시 연설

12장 남북관계의 ‘원상회복’
#한.미 줄다리기
-부시,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 햇볕정책 적극지지, 북한 침공의사 없다, 대화 모색, 식량지원 계속
#특사가 되어 다시 평양으로
-통일문제는 우리민족끼리 공조하고 주도적으로 해결하지만 평화문제는 남북공조는 물론 국제공조를 통해 해결 주장
-김정일 면담; 대화 통해 미국내 강경여론 약화 유도 김대통령 권고
-김정일; 뉴욕 실무자접촉 때 부시 험담 이해 발언에 위안-601쪽
클린턴 정부와는 말이 잘 통했다며 아쉬움 토로
우리는 탈레반이 아니다, 전쟁을 하자면 하자-603쪽
-김정일 위원장 대미 태도; 불신, 두려움, 관계정상화 간절히 희망
#선미후남인가, 선남후미인가
-김정일; 동해선 철도 연결 필요성 제기; 경원선은 무조건 안되고 동해선 철도 연결 주장
서쪽 경의선을 중국 횡단철도와 그리고 동쪽 동해선을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하면 조선반도가 ‘평화지대’, 전쟁이 벌어질 수 없다-613쪽
#‘원상회복’을 위하여
-김정일, 서울답방 부시 때문에 불발-614쪽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와 3국 정상회담 통해 철도 연결문제 협의 제의
-합의서 초안 작성시 북측 식량, 비료, 금강산 사업비 지급보증 이면합의 요구
-새벽 3시 합의문 채택-620쪽
#김정일과의 5시간
-감수광 혜은이 근황 질문, 김연자 공연 때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나훈아 ‘갈무리’ 등 6곡 신청
-폭탄주 질문
-백화원 영빈관 위성방송 CNN, BBC
-인터넷 통해 청와대.국정원.통일부 등 방문, 통일부 ‘북한 올바로 알기’ 사이트 칭찬
-부대방문 때 지방서 밤에 인터넷으로 남쪽 TV뉴스 동영상 보기-624쪽
-‘우익테러’ 걱정
-경제 구조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문제
-한국 김치 세계적 보급 평가
-박근혜 만남 희망
-대통령 단임제 도무지 이해 안된다-628쪽
-남쪽 영화와 TV사극 관심; 호평, <춘향뎐> 혹평
사극 <여인천하> 이명수 작전국장, 김용순 대남비서 30편, 29편까지 시청
김정일은 80편까지 시청
<태조왕건> <명성황후>도 호평
-서방세계에 북조선을 올바로 알리기 위해 노력해주시는 대통령께 감사-631쪽
#꽃샘추위
-최성홍 외교부장관 ‘큰 몽둥이’ 발언 워싱턴 포스트 보도
-국내언론 금강산댐 균열 보도
-2차 정상회담 김정일 이르쿠츠크 제의에 판문점 대안 제시
-러시아 정부 극동지방 정상회담 주선, 3국정상회담 가능 제의 거부; 푸틴과 사전협의 추정
-6.29 참수리357호 침몰
#북의 경제개혁
-2002.7.1 경제관리개선조치
-참수리호 관련 분단 사상 처음으로 북측이 우리 정부당국에 공개적 유감의 뜻 표명-641쪽
-76년 판문점 도끼만행, 96년 잠수함 침투 당시는 미국의 압력으로 미국정부에 유감 표명
#다시 움직이는 네오콘
-2002년 9월 고이즈미 방북; 네오콘 강경파의 반발
-존 볼튼; 고농축우라늄 개발 우려할 만한 수준 발언
-미군, 비무장지대 이용 여러 차례 제동-647쪽

13장 제2차 북핵위기
#굴복을 강요하는 ‘대담한 접근’
-2002년 5월 미국특사 방북 우여곡절 속, 존 볼튼 북한 군사공격 목표 발언
-네오콘 강경파 결정 우리측에 통보하는 일방주의적 행태-655쪽
-대담한 접근; 선 북한의 변화 후 협상
-6월 서해교전 구실로 대북특사 방북 취소
#제임스 켈리의 방북
-북측과의 대화록 사본을 공유하자는 우리측 제의 묵살-665쪽
#고농축우라늄계획의 진실은?
-10월 7일 미국 정보요원 3명 방한 고농축우라늄개발 동향 설명; 지하시설 건설 확실 판단, 위치는 미확인, 알루미늄관 등 자재 확보, 2004년 후반기부터 고농축우라늄 생산가능
-북한이 풀루토늄핵폭탄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우라늄핵폭탄까지 개발하려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가정-669쪽
-파키스탄 대통령 자서전; 99년경부터 기술과 원심분리기 20기 지원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 평양 방문하는 정세현 통일부 장관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메시지 전달
-10.25 북한 외교부 대변인 담화
#제네바합의는 깨어지고
#‘북핵’은 다시 움직이고
-북한 핵동결 해제, 핵시설 가동과 건설 재개
-임성준 외교안보수석 미국 방문; 매파들이 한걸음 물러서 비둘기파 사태수습노력 관망-689쪽
#평양의 겨울
-2003.1.27 특사 방북
-핵문제는 상호신뢰가 조성되지 않는 한 장기화, 북핵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691쪽
-핵문제 해결 쌍무대화 혹은 다자틀 대화 속 국제화 거론
#<명성황후>에 담긴 은유
-쌍무회담 미국측 입장 변화
-네오콘의 벽 극복 못하고 북한 설득도 어려워-702쪽
-국내의 냉전적 사고와 사대주의적 조류도 극복 못해
#핵실험
-불확실한 고농축우라늄계획으로 확실한 플루토늄계획 재가동시킨 미국의 잘못-703쪽
-2003.1 북한 NPT탈퇴
-미국 북핵문제 국제화 추진
-2005.2.10 북한 핵무기 보유 선언
-크리스토퍼 힐 대사, 핵무기 보유 선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북한과 직접대화, 6자회담 틀 안에서 양자회담 추진 바람직 권고
-2005.5 북한 핵연료봉 추출 완료 발표; 3번째 추출분으로 6-8개 핵폭탄 제조할 수 있는 40-50KG 플루토늄 확보 미 정보판단
-9.19 공동성명
-금융제재
-네오콘 비군사적 방법에 의한 북한 정권교체 전략 추진-707쪽
-2006.10.9 북한 핵실험 강행
-2007.2.13 합의로 돌파구 마련

14장 평화와 통일의 길
#영광의 길
#대북송금 특검과 국정원 불법감청 사건
-2003.2.14 김대중 대통령; 현대 5억달러는 정상회담 대가가 아니다, 국정원 2억달러 환전편의 제공
-6.25특검; 대북지원 차원 1억달러 정부가 현대에 요청, 현대가 4억5천만달러 송금
-노무현 대통령은 특검으로 남북관계 경색케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결과 초래-719쪽
#민족의 희망을 세운 10년(1998-2007)

에필로그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병행전략 필요
-평화협정은 2+2+UN 방식이 바람직

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
-장성민
1.김정일은 누구인가
세계 파워 엘리트에 오른 김정일
-<뉴스위크> 2008년 세계최고의 파워 엘리트 50인 중 12위

탁월한 선전술의 이면
-42년 2월 16일생
-1992년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조선인민군 장병에 영광 있으라”고 짧게 한 발언이 공식연설의 전부

철저한 후계자 수업과정
-대학 졸업후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시작
-1967년 선전선동부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식 후계자 지명
-김일성 학력은 중학교 2학년

의외의 인물 김정일
-엄청난 독서광; 조선노동당 고위간부 출신 신경완 증언
-황장엽; 당과 군 완전 장악, 정치적 수완, 미국과의 관계에서 두뇌회전 빠르고 이해관계 계산하는 능력 출중

능란한 외교적 수사력
-상대방이 긴장하면서 약간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화법으로 주도권; 2000년 남북정상회담
-평소 학습이거나 아니면 철저한 준비

치밀한 전략가의 두 얼굴
-새벽까지 보고서 체크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그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기 힘들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취재 기자 평가; “첫 날 모습은 원맨쇼... 대단한 카리스마... 아는 게 많았다... 사람을 장악할 줄 알고 자신의 계획대로 몰고 나갈 줄 안다는 것이다.“

2.김정일은 건강한가
동북아 지정학의 뇌관, 김정일의 건강

김정일 건강악화의 주원인
-술; 조니워커 스윙과 헤네시 XQ
-술친구 김용순 2003년 10월 26일 비밀파티 후 교통사고 사망
-황장엽 증언; 김용순 가까이 하지 말라는 김일성의 충고
-김일성 사망 후 절주
-2000년 남북정상회담; 보르도 또 부르고뉴 와인 좋아한다, 50세 이전에 술 많이 마셨다.
-황장엽 증언; 술파티에서도 맹물만 마셨다.

불안정한 병상통치
-85년 소련 대사 보고서; 김일성 일가는 신장결석 체질
-흡연으로 쉰 목소리, 금연
-운동부족; 즐기는 스포츠는 사격, 승마, 사냥

무리한 현장지도
-과도한 피로
-여운형 둘째딸 여연구; 공화국에서 가장 늦게 자고 가장 일찍 일어나는 분
-64년 6월부터 99년 6월까지 35년간 3,900여일 7,400여 단위 현지 지도
연평균 111일, 211개 단위 지도한 셈
-현장지도로 민심과 군부 불만 다독여

김정일 이후, 가능한 시나리오

3.김정일의 후계자는 누구인가
태국의 왕조체제를 꿈꾸다
-2001년 10월 올브라이트 접견 시; 나는 태국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물림보다는 왕조체제 구축-60쪽

당과 군부의 파워게임
-군부의 영향력 확대; 80년 이후 노동당 전체회의 무, 중앙위원회는 93년 12월 이후 무
-‘김정일 절대 지배를 특징으로 한 선군형 독재체제’로 변모 중
-전당후군부 협력체제
-군부의 치명적 약점; 통치능력, 정통성 부족

김정일 권력대행자는 누구인가
-매제 장성택
-2008년 아프리카 여행하면서 김정남과 후계구도 논의
-유교적 장자 상속사회 정치문화; 김일성 후계자에서 배제된 차남 김평일과 삼촌 김영주

김정남은 친중국 개방파인가
-성혜림; 장남 김정남 72년생?
-김영숙과 74년 결혼; 설송 등 두 딸
-고영희; 김정철, 김정운, 김여정
-김정남 어린 시절 남한 TV 시청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 유학, 북한 출신으로 자본주의 국가에 유학한 첫 번째 인물
장성택도 동행
-모스크바 프랑스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학교 생활
-스위스 국제종합대학 졸업, 프랑스어 영어 유창
-김정일이 김정남 외유시킨 두 가지 이유; 1.불필요한 권력 다툼 배제 2.자신의 통치력 약화 배제
-김정남 2001일본 밀입국; 이라크 미사일 판매 대금 수금
-마카오 거주; 2005년 9월 미국이 BDA 2500백만 달러 김정일 통치자금 동결하고 2007년 3월 14일 조사 종결할 때까지 김정남 역할
-2007년 6월 노동당 조직지도부 일
-2007년 2월 베이징서 후지 TV 인터뷰, 신분은 노동당 39호실 산하 ‘조광무역 총책임자’
-김정일 통치자금 마련하는 외화벌이 총책임자-81쪽

김정일의 아바타 김정철
-81년생
-김영숙과 결혼한 지 2년 만에 고영희 만나 76년부터 동거
-94년 김일성 사망 후 성혜림 우울증 후 영향력 커져
-외모는 김일성과 닮아
-2004년 5월 26일 고영희 사망
-동생 고영숙, 남편 박건과 98년 미국 망명; 교통사고의 배후에는 김정남-87쪽
-김용순 2003년 6월 16일 고영희 생일날 교통사고; 제거 음모설
-고영숙; 김용순 91년부터 고영희에 충성 맹세
-2000년 기점 김정남 파워 고영희 세력이 견제
-장성택 대외활동 2003년 7월부터 중단, 2004년부터 직무정지, 2006년초 복귀
-김정철; 93년부터 98년까지 베른 국제학교 졸업
장 클로드 반담, 데니스 로드맨
‘나의 이상세계’라는 시-범죄와 빈곤이 없는 곳
-김정일의 나쁜 평가, 김정일이 가장 마음에 둔 아들은 김정운-후지모리 겐지 요리사
-2001년부터 2006년 4월까지 김일성 군사종합대학교 특설반

김정일 빼닮은 샛별장군 김정운
-84년 9월 25일생
-베른 국제학교 졸업, 김일성 군사종합대학
-김정일과 닮아, 운동부족 비만, 고혈압, 당뇨
-김정남에 대한 견제의식
-베일 속 김정일; 1. 연소자 2. 김정일의 보호

떠오르는 장성택, 개혁개방의 설계자인가
-46년생
-김정일 동생 김경희의 적극적 성격과 역할
-김정일도 유일한 혈육인 김경희를 아낀다
-95년 당조직지도부 부부장
-큰 형 장성엽 김정일 개인교수, 둘째 형 장성우 평양방어 3군단장, 셋째 형 장성길 인민군 중장, 매제 전영진 주 스웨덴 북한대사관 직원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주도적 인물
-2007년 10월 신설 당 행정부장 임명
-김정일을 대신할 수 있는 상징적인 복심 필요
-김정남 후계 이유; 1.고영희 아들들 보복 우려 2.김정남 어머니 성혜림에 대한 보은
-두 번의 실각으로 등소평과 닮아-120쪽

4.김정일은 외교의 천재인가
총을 든 선군외교
-지정학적 위치로는 체제 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도움, 핵무기로는 주권침탈 방지

우리식대로의 주체외교
-외교 스케쥴은 생명스케줄로 최대의 비밀로 간주
-상대국을 긴장, 당황케 만들어 정상외교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는 계기
-93년 3월 NPT 탈퇴-자신의 프레임워크에 따른 외교행보

전략적 파격외교
-군사작전식 전시외교
처칠“전쟁보다는 외교로 싸우는 게 낫다”, 주은래“모든 외교는 다른 수단들로 벌이는 전쟁의 연속” 현실화
-협상이란 곧 김정일의 명령과 지시를 이행하는 또다른 시도
-‘전사형 협상태도’는 서방국가의 ‘상인형 협상태도’와 대비
-군부의 외교적 위상 강화

기선제압협 압박외교
-전쟁과 외교라는 상충되는 개념을 하나의 틀로 전시외교 펼쳐
-군사적 위기조성, 기선제압, 협상이슈 선점, 상대 프레임 무효화, 극적 타결 5단계 과정
-94년 3월 ‘불바다’ 발언
-평양에서 내린 명령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시간을 끌면서 협상 지연
-2006년 미사일 시험발사, 핵실험으로 2007년 9.19 공동성명으로 극적 타결
-군사력 동원은 전쟁행위라기보다 또다른 형태의 외교행위

직선형 통큰 외교
-김정일 공식 외교무대 등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선적 성격과 즉석 결정

5.북한은 왜 핵을 포기하지 않는가
북한 핵과 체제 유지의 딜레마
-체제유지의 비법 중 하나는 핵무기 보유

구 소련과 북한 핵 개발
-50년중반부터 소련의 지원
-70년대 김일성 핵무기 개발; 남한과의 경제력 격차가 주원인
-구 소련과 중국의 대북한 정책에 대한 불신도 핵무기 개발 요인
-남한과의 전면전은 불가능-169쪽
식량과 석유 부족 때문
-핵개발은 군사력 균형 위해; 올브라이트 장관과의 대화-175쪽
-국방비 감축을 통해 체제붕괴를 막겠다는 동기

냉전체제의 해체와 북핵
-89년 동구권 붕괴, 중국 시장주의 선회, 구 소련 해체로 핵무기 보유에 강한 집착
-94년 1차 핵위기도 계기

북핵, 대반전의 카드인가
-2001년 아프간전과 2003년 이라크전도 북한 핵무기 개발에 탄력
-2003년 6월 미의회 대표단 방북 때 북한 관리들; 핵무기 제조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184쪽
-미국의 선제공격 노선이 김정일 핵무기 전력투구 유인
성공적인 북핵 외교해법
-핵무기 보유는 체제 유지의 알파이자 오메가-187쪽
-해결책은 핵무기와 같은 수준의 ‘외교적 대체재’로 북-미 정상회담 통한 일괄타결-187쪽

6.김정일 이후의 북한 어디로 가나
북한은 붕괴하는가

벼랑 끝에 선 김정일 체제
-식량위기로 인한 리더십위기가 체제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미연에 막고자 한국과 서구 국가들로부터 식량원조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식량원조는 ‘독이 든 당근’

개혁개방, 토로이의 목마인가
-경제적 체재 개방으로 동독과 같은 수순 우려
-특구형 개혁개방정책은 효과 의문

또하나의 핵폭탄, 김정일의 건강

왜 북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가
-체제 붕괴와 국가 붕괴는 차이
-붕괴의 충분조건 부재; 수령체제 도전 사상 부재, 단일 민족 공동체, 반동세력 부재, 리더 부재, 대안체재 부재, 군사쿠데타 불가능, 식량위기는 붕괴와 무관, 남침 전쟁 가능성 희박
-김정일 이후 점진적 체제 변화 시나리오

7.김정일과 미국
배짱외교의 겉과 속
-김정일은 미국은 매우 두려워 한다
-‘통 큰 행보’와 ‘배짱’은 미국의 관심 끌기

‘악의 축’과 ‘폭군 중의 폭군’
-이라크전 당시 김정일 중국 국경 근처 은둔

미국의 ‘선제공격’과 북한의 ‘선군정치’
-냉전,동맹 체제 붕괴 후 미국의 위협 인식 강도 높아져

미국의 ‘김정일전략연구소’
-미국의 군사공격에 대한 공포와 심한 피해망상증

미국 타도와 타협 사이에 선 김정일
-미국과의 관계 개선 위한 김정일의 노력은 실패의 연속

조명록이 군복을 입고 백악관에 간 까닭은
-전시관계 상징하면서 대미관계 정상화 의지 표출
-주한미군 유지 김정일 발언

북미관계 정상화화 북핵카드
-미.중 경쟁 속 줄타기 외교;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 활용
-북.일 수교 배상금
-남한의 지원과 러시아 에너지 지원 겨냥

8.김정일과 중국
소용돌이치는 북.중관계

혈맹관계의 종언

중국은 북.미 간의 정직한 중재자인가
-94년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 새 한국전 피해 전망; 미군 사망자 8-10만명, 한국군 사망자 수십만명, 전쟁비용 최저 5억달러 최대 1조달러
-영변 선제공격 불가 결론

대중국 편승외교전략
-아버지 부시와 키신저가 북한 핵문제에 중국이라는 지렛대 활용 조언
-부시행정부 대중 정책 ‘전략적 경쟁자’에서 ‘전략적 협력자’로 변경
-북한의 보이지 않는 대중국 편승외교 전략

중국을 위협하는 북핵
-북한핵은 중국의 ‘파워감축’ 요인
-소수민족 독립운동 자극
-미국과 일본의 중국의 뒷마당 접근 명분
-북한핵은 북.중 국경 분쟁에 불리
-한국,일본,대만의 핵보유는 중국에 재앙
-북한 체제붕괴의 후유증으로 경제성장 걸림돌

북한을 압박하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중국의 개방과 북한의 주체는 상충

김정일의 후계승계를 반대했던 중국지도부
-김정일은 중국을 싫어한다;황장엽
-모택동 반대, 등소평 마지못해 찬성
-북.중 갈등 누적; 대만 핵폐기물 처리, 대만과 직항로 거론, 황장엽사건 등

‘양빈사건’과 북.중 갈등의 심화
-주룽지 총리 신의주 특구 반대로 개성공단 추진
-김정일; “역시 중국 사람들은 믿을 사람들이 못됩니다.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대북제재 국면을 둘러싼 중국의 반북행보
-안보리 대북결의안 1718호 찬성
-북한핵의 중국 위협 억제 측면 강화

핵을 가진 북한은 미.중 공동의 적인가
-중국 견제 위해 미국 유인 전략 강화
-김정일; ‘통일 이후 미군 주둔 괜찮다.“
-미국.중국 북핵 포기 긴밀한 협력; 일본의 핵무장 방지 목적

9.한반도 영구평화의 조건
동북아 안보의 블랙홀, 북한 핵
-한-중, 한-소 수교 후 북한 핵무기 개발 가속화 추정
-동북아 핵무기 열대화, 핵확산 도미노 현상-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인가?

북핵 도미노
-일본 핵무장 압력 막기 위한 미국의 북핵 폭격 가능성

미국 외교의 대실패, 북한 핵
-94년, 2002년, 2007년 위기


북핵문제와 힐러리 클린턴 변수
-오바마 ‘힘의 대화’

오바마.김정일 정상회담과 북핵위기 5단계 해법
-미국의 옵션;
1.핵보유국 인정-핵물질 노출-군사공격 명분 확보
2.직접대화; 5단계 해법; 특사-실무급 회담-정상회담 개최 발표-6자 정상회담-UN 집단안보체제

맺음말
‘불완전한 평화’를 넘어 영구평화의 미래로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

서론 생각하기 위한 신발
-거의 모든 경우에 스타일의 문제는 어떤 지점에서 소비와 관련이 있고 스타일의 대중적인 관념을 전달하고 극대화하며 굴절시키고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의 위력과 연관이 있다.

-이 책이 추적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 즉 근대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스타일의 명성 의의, 소비에 관한 문제이다.

1부 눈의 마음
제1장 “...바닥없는 이미지들...”
-끊임없이 전달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전언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곧 스타일이란 하나의 생활방식이며, 그것도 한없이 풍요로운 부로 가득찬 유토피아적 생활방식이라는 사실.

-그러나 텔레비전의 터널 맞은 편에는 시청자가 앉아 있다. 그는 값싼 옷에 궁전도 없고, 수표는 다 썼으며, 가능성의 속박 안에 놓여있는 욕망의 불안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시청자는 일상생활이라는 결정적 한계 속에 파묻힌 채 텔레비전을 본다. 바로 이런 위치에서 시청자는 스타일과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스타일은 사람들의 이해방시과 그들 주변 세계와의 관계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스타일은 강력한 자기표현 형식, 즉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각인시키는 방식이다.

-페루에서 자란 린다 M "그 사회는 이제, 진정한 의미도 없고 바닥도 없는 매혹의 이미지들은 잔뜩 진열해놓고 있는 공허한 현실에 질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마취시키는 것을 더 좋아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스타일은 이제...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인간 자체를 잃고 있다.

-정치적 쟁점 및 정치가들은 이미지 관리자들의 화장술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들은 텔레비전에 잘 맞는 상품을 대중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이미지와 장식이 수행했던 역할은, 현대적 삶에서 스탈이 제시하는 변화무쌍함과는 사뭇 다르다.

제2장 상품과 표면
#시각세계의 가죽을 벗기는 사람
-1859년 올리버 웬델 홈즈는 사진에 관한 논문에서 사진이 “기억을 가진 거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진 이전에는, 사람이나 장소 또는 사물의 모습이 저마다 고유한 물질적 실체에 꼼짝없이 매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홈즈에게 사진은 이미지가 사물 자체보다 더 중요해지고 사실상 사뭉를 폐기할 수 있게 만드는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홈즈의 분석에는, 실체에서 떨어져나온 사물의 이미지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이미지들의 거대한 활황시장을 낳으리라는 선견지명이 담겨 있다.
“자연과 예술의 모든 인지 가능한 대상은 곧 그 껍질을 우리 앞에 벗어보일 것이다. 남미에서 별 가치가 없는 고기덩어는 제쳐두고 가죽만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처럼, 인간은 이제 모든 신기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것들을 사냥할 것이다.”

#스타일과 사회적 이동
-대개 권력의 지표로 이해되어왔던 세련된 의상들을 이제 성공한 상인들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귀족계급에게 상당한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상인의 부가 쌓이기 이전까지 귀족의 의복에 대한 권한은 오직 그들만이 호화로운 의상비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상업의 부상은 상업도시의 성장과 함께 나타난 ‘호화장정’ 필사본의 확산을 통해 잘 설명될 수 있었다. 이 시기 이전에는 책이란 봉건귀족의 귀중품이자 “최상의 사치품”이었다. 하는 채색 필사본을 제작하는데 드는 노동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의복 또한 그 개인보다는 신분에 속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고정된 신분의 광역 내에 위치한 하나의 특정한 신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적인 스타일 시장이 성장해감에 따라 이미지는 차츰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성공을 가리키는 징표가 되었다.

-생산은 스타일에의 접근 가능성과 따로 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오늘날 스타일 시장을 대량생산의 리듬과 맞물려 있고, 이것은 다시 표준화된 상품의 증산 및 선전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한 연결은 19세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14세기 이전에 설탕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희귀한 것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왕의 사탕과자가 부르주아적 도락으로” 상당부분 전환함에 따라, 특권의 표시지이자 민주화의 장치로서 기능하는 스타일의 독특한 능력이 드러나게 되었다. 설탕을 확고한 중간계급의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교하게 장식한 결혼기념 케이크도 부르주아적 습관으로 제도화되었다. 요컨대 그것은 중간계급의 번영을 향해 층층이 쌓아올린 기념탑인 셈이었다.

#표피적인 것의 승리
-스타일 상품의 대량생산과 마케팅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소비민주주의는 엘리트의 상징과 특권이 이제 대량생산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상에 근거했다.

-장식을 기계로 새겨넣은 것이 유행하면서 대량생산 스타일은 강력한 매력, 지속적인 유인요소를 갖추게 된 셈이다. 산업디자인 사학자 아서 펄에 따르면, 1830녀대가 되면서 상품의 표면에 “기술과 스타일을 용용하는 일”이 “마케팅에서 중요한 일로” 떠오르게 되었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말은 하나의 제품을 그 시작에서부터 만들어가는 공정계획을 뜻했다.

-건축은 표면과 본질의 분리로 인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 경골목 구조와 거튼 벽이 발전하면서 기술공학자들과 건축가들의 기업은 점점 분화되어 종종 서로 어긋나게 되었다. 공학자들의 임무가 건물을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건축가들은 한 디자이너가 말했듯이 “변덕스런 상인”의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19세기 건축에서 보이는 절충주의적이고 과장이 심한 특성은, 표면 그 자체를 목적으로 만드는데 그것이 몰두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정련된 사진
-19세기 이전 생활의 틀 속에서는 비싼 옷이나 물건처럼 유화도 신분의 징표였다. 다색 인쇄물들은 고급예술의 시각적 매혹을 바로 그 점차 민주화되면서 부상중에 있던 소비자 시장으로 옮겨놓았다. 19세기 후반의 광고와 포장술은 다색인쇄술을 지속적으로 이용했다. 다색인쇄는 민주주의-비록 이미지의 민주주의였지만-의 극적인 제창이었다.

-사진의 성장은 아마도 19세기에 이룩한 어떤 발전보다도 더 뚜렷한 근대적 스타일의 징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이전에는 초상화법이 이젤화의 전통과 연관을 맺고 있었다. 일찍이 초상화는 부의 소유물로 인식되어왔다. 어떤 종류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인격의 징표로 이해했듯이 초상화는 사회적 특권의 상징이었다. 사진이 탄생하고 스타일이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던 시기에 초상화의 붐도 일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위의 징표를 추구함에 따라, 미국에서는 1840년대부터 계속하여 초상화 스튜디오가 번창했다. 스튜디오에는 사람들을 부와 지위의 장신구들로 잔뜩 치장한 후 촬영한 상업사진들로 가득차 있었다.

제3장 예술과 상업의 결혼
#통합되는 영상들
-독일 거대 전기회사 AEG의 대표 발터 라테나우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었던 페더 베렌스 Peter Behrens에게 AEG를 하나로 묶는 단일한 기업을 외양을 창출해내도록 특명을 내렸다. 베렌스가 맡았던 임무는 “회사 건물과 제품들 그리고 간행물들, 거대한 터빈 공장에서 사소한 인쇄물의 마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공표된 ‘기업이미지’, 곧 찰나의 세계에서 이 기업만큼은 영속하리라는 사실을 일관되게 일깨워주는 그런 이미지의 탄생을 알리는 일이었다. 베렌스의 AEG작업은 이후의 산업 디자인 영역을 위한 원형을 창조해냈다.

#소비자공학
-건축가이자 1907년 미국박람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다니엘 번햄은 시카고 상인클럽 연설에서 “미는 다른 어떤 상품보다도 더 나은 수익을 가져다 주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청중들에게 조언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발전의 예들 가운데 하나는 광고이다. 월터 리프먼은 1914년 쓴 글에서, 광고의 개화를 사업가들이 “생산뿐 아니라 소비까지도 말아먹으려”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에그몬트 애런즈는 1929년에서 1933년 사이 광고회사 캘킨즈와 홀든 광고회사에 근무할 당시 ‘소비자공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캘킨즈 역시 1927년 <월간 대서양>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미-새로운 사업수단’라는 글에서 사업과 미학 간의 체계적 통합에 대해 역사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

-캘킨즈는, 젊은 광고산업이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예술가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따라서 예술적 기준에 의해 단련된 많은 사람들이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작업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고치기 작업에 영향을 받은 최초의 상품이 패션 상품과 화장품들이었다.

-이제 광고는 제품디자인과 상표화를 넘어서서 소매환경의 영역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렇게 더 잘 디자인된 상품들과 포장들은 그것이 팔릴 만한 더 나은 환경을 요구한다. 따라서 가게나 상점을 꾸미는 데에도 혁명이 필요하다.”

-캘킨즈에게는 한 상품의 효용성과 내구성이 오히려 판매를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캘킨즈에 따르면 미가 강제적인 소비를 자극함으로써 효용 요인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용인받을 수 있었다.

-1920년대 말이되면 시장의 스타일화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상품과 포장, 소매점 설비, 광고 등에 영향을 미쳤으며, 대중매체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린드는 1920년대의 “정간물과 신문의 광고 및 편집 내용에서 점점 스타일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사건의 변화는 1931년 비엔나에서 글을 썼던 에곤 프리델에 의해서도 어김없이 포착되었다. “이제 더 이상 실재는 없다. 단지 장치만이 있을 뿐이다. ... 상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광고만이 있을 뿐이다. 가장 가치있는 상품은 가장 효과적으로 찬미된 것, 가장 많은 자본이 광고에 투자된 것들이다. 후리는 이 모든 것을 아메리카니즘이라 부른다.”

#이미지와 욕망
-막 생겨나기 시작한 여러 재현의 장치들 덕에 많은 기업들은 사회과학적인 도구들을 동시적으로 차용할 수 있었다. 그런 도구들에는 대중심리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소비자의 마음에 미친 이미지의 영향에 대한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심리분석은 ‘새로운 사업적 수단’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지침서라 할 만한 <소비자 공학(1932)>을 에그몬트 애런즈와 함께 썼던 로이 셸던은 프로이트나 융, 알프레드 아들러, 파블로프 등의 저작에 의해 결실을 맺은 “놀랄만한 성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의 한 실례로 셸던과 애런즈가 촉감에 관해 도구주의적 논의를 벌였던 경우를 들 수 있다. 촉감을 후각과 더불어 서양의 근대문명에서 가장 덜 알려져 있고 가장 억제된 감각이었다.

-1930년대가 되자 이러한 감정이나 욕망 또는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스타일산업에서 통용되는 용어로서 중요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시기의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였던 해롤드 반 도렌은 “디자인이라 기본적으로 선과 형태, 색조, 색, 질감 등을 사용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예술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패서디나 건축예술학교의 장 아벨은 ‘근대 디자인’을 통제하는 지배적인 개념으로 ‘단순화와 통제’를 들고 있다.

-레이몬드 로위는, 산업디자인은 “시장을 염두에 두고 일상적 삶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상업적인 스타일의 영역에서 “일상적의 삶의 구성”이 근거하는 기본가정은 매일매일 삶이 가시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런 현상을 neomania, 곧 끊임없이 새것을 갈구하는 광증으로 보았는데, 여기서 그 ‘새것’이란 ‘구매가치’, 곧 살 만한 어떤 것으로 정의된다.

-1960년대의 일류 산업 디자인 회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타일의 노화는 상품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1930년대에 소비경제가 심각한 곤란에 처하게 되자, 스타일링과 “스타일 노화”는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들로서 최전선에 나서게 되었다. 에른스트 캘킨즈도 이에 동의하면서, 내구재조차도 다시 개념화해서 소모품인양 팔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2부 이미지와 정체성
제4장 선택된 사람들
#특혜의 징표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의 골드 카드 모집 안내편지
“선택된 분들만이... 골드 카드는...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줍니다.

-중세 말 이후로 지위에 대한 꿈이 거상들에게 도익부여를 해주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새롭고 기계화된 생산장치들이 출현함으로써 그 꿈은 경제엘리트들과의 사적인 결합을 훨씬 뛰어넘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매사추세트 노동국의 1873년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는 ‘가난’이라는 제목의 글
“중간 계급은 자신의 가난에 대해서 절대로 어떤 시위나 공공연한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곤궁을 광고하는 것은 신용을 잃는 것이다.

-1958년 데이비드 오길비
“염가판매의 이미지 대신에 상류계급의 이미지를 상품에 부여하는게 수지맞는 일이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첫인상
-‘신참 이주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곧 사기나 조소에 노출되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미국인’의 외모를 본따는 것은 생존의 장치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스타일의 소비자시장은 19세기에 시작되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발전하면서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에 깊숙이 도달하고 있었다. 스타일은 소수의 특권으로부터 수백만 명의 기쁨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었다.

-다양한 이방인들의 삶 속에서 스타일이야말로 극적인 필수품이었다.

제5장 완전함의 꿈
#개성 만들기
-엘리트 계급의 생득적 권리로부터 ‘대중’을 위한 기분전환으로 탈바꿈해온 스타일의 변화과정은 상징적 민주주의화 과정으로 수비게 해석될 수 있다.

-스타일(특히 의상의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편입하기 위한 장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렇듯 방어적인 이미지 사용에서 더 나아가 스타일은 또한 개성을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해되었다.

-생산엔진을 통해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량생산 상품들이 넘쳐흐르게 되자, 주식회사들은 점차로 판매과정을 체계화하고 관례화했다.

-C. 라이트 밀즈 <화이트 칼라(1951)>
“1910년대 이후로 관료제의 관심은 대량생산과 개별 소비 사이의 간극에 집중되었다. 세일즈맨십은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충족의 경로:사진과 유명인사
-스타일의 나머지 반쪽으로 기능하는 사진은 세심하게 계획된 조건에서 찍힌다.

-광고사진 작기인 마이클 랍은 “같은 다리에서 완벽한 발과 발목 그리고 장딴지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끔은 세 가지 모두 완벽하게 하기 위해 사진들을 조각내 붙여야 할 경우가 있다.”

-영화감독 세실 B, 데 밀 “ 보통 할리우드의 육체파 여배우라면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번호를 붙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방이나 주거공간도 스타일 사진을 통해 의례적으로 살균과정을 거친다.

-상업사진의 선구자 중 하나인 존 에버라드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낡은 오류가 사진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음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카메라의 세계에서는 꿈의 세계가 실현된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상업사진과 마찬가지로 유명인사 현상도 현대 소비문화의 이미지 재생산 메커니즘과 분리될 수 없다.

-일상적인 삶이 점차로 무의미해지고 표준화되는 사회에서는 ‘스타’가 개인과 인간에게 유의미한 도상을 제공한다.

-예술작품의 복제를 통해 예술품의 소유는 더 민주화되었지만, 성스러움은 삭감되었다. 원본의 맥락이 제거되고, 본래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의 복제과정에서 상실된 것을 ‘아우라’라고 불렀다.

-명상의 현상학은 그 반대에 가깝다. 위대한 예술이 대량 인쇄시장에서 아우라를 잃었다면 유명인의 개인적 삶은 대중적 복제를 통해 아우라를 얻는다.

-밀즈 ‘파워 엘리트’ “막강한 홍보 선전기술, 그리고 끊임없는 복제에 대한 미디어의 탐욕으로 인해 그들은 세계 역사상 어떤 국가의 상류계급도 받지 못했던 각광을 받고 있다.

-무명상태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살찌우는 그런 사회에서는 자기정체성과 완전함의 꿈이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과 미럽하게 엮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보여지고 기록되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1939년 마가렛 파란드 도프는 미국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할리우드의 소비유형(화면 상의, 그리고 화면 바깥의)이 대중 소비의 준거틀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 그로 인해 “버몬트 주나 오레곤 주의 주부들이 미용사나 양재사, 장식가들에게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형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패션의 독재자 역할로서 영화는 달리 겨룰 대상이 거의 없었다.”

-또한 유명들은 한 번 돈을 물쓰듯 써보면 어떨까 하는 모든 소비자들의 소망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소비자들처럼 대부분의 유명인들 역시 고용인에 불과하다...그들의 명성과 재산은 ‘경쟁의 모든 변동과 시장의 부침에 노출되어 있다’...명사도 ‘기계의 부속물’이다. 이 경우 기계란 미디어 산업이자 ‘최고로 환영받는 수단’이었다.

-명성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구매할 때까지만 지속된다. 만약 인기가 떨어지면-종종 일어나듯이-그들은 거대한 문화적 쓰레기더미의 일부가 된다.

#독립성의 장식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반복적이고 파편화된 행동들과 제도화된 속임수들은 자유의 실현을 한층 교묘하게 회피하게끔 만든다.

-스타일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활동에서는 회피하고 있는 ‘완전함의 꿈’을 발견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노동구조는 종종 좌절의 열매를 맺고 있는 반면, 소비주의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자유에 대한 욕망, 욕구하려는 자유를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순환을 통해 스타일은 그것을 대량생산하고 판매하는 본질을 보충한다.

-행동의 대리자롯 우리는 행동의 상징을 소비하도록 유도된다. 흔히 농담처럼 말하듯 “삶이 힘들어지면, 쇼핑을 간다.”

-산업 디자이너 J. 고든 리핀코트 “현대와 같은 대량생산 시대의 익명사회에서는 인간적 매력이라는 특성이 경쟁에 대응하는 확실하고도 특별한 수단이다. ... 사람들이 대량생산의 익명성을 싫어하는 한, 개성을 지닌 상품에는 언제나 판매의 매력이 더해져 있을 것이다.”


3부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이미지와 권력
제6장 눈가림한 야만주의
#역사의 외관
-유럽 봉건주의 맥락에서는 스타일과 소비형태가 귀족과 고위성직자들의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빈곤과 힘든 노동이 삶을 규정했던 세계에서 그러한 사치스런 이미지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의미했다.

-뉴욕이 5번가에는 백만장자들이 사회적 과시와 사생활 사이에 눈에 보이는 선을 긋고자 지은 맨션들이 들어선다. 그 결과 건축은 건설에서 장식으로 극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비록 자신들의 재산을 산업자본주의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이 19세기 도둑 남작들은 귀족적 특권의 요란한 진열품들로 스스로를 둘러쌓았다. 이들 산업귀족들의 번지르르한 겉치장 용품들은 위대한 과거의 이미지 창고에서 무차별적으로 꺼내온 것이었다. 이 이미지들은 전체적으로 달러화의 기념비에 지나지 않았다.

#미래의 외관
-1936년에 스위스 역사학자 후이징가는 “19세기는 결코 자기 스타일을 갖고 있지 못햇다. 그 대부분이 한번 번쩍한 뒤에 희미한 잔광만을 남길 뿐이다. 그것은 스타일의 결여, 스타일의 혼합, 오래된 스타일의 모방... 말하자면 모방하려는 경향성을 그 특징으로 할 뿐이다.”

-에디스 워튼은 1879년에 출간한 <집꾸미기>에서 부르주아 사회가 “상식적인 접근방식과 조화와 비율의 법칙이 디자인을 지배했던 건축의 황금시대”로부터 “비상식적인 난장판이 벌어지는 장식의 도금시대”로 타락했다고 보았다.

-“근대문명은 눈가림한 야만주의라고 불려왔다. 이러한 유형은 근대적 장식에 깃들어 있는 표피적인 우아함에 아주 잘 적용될 법하다. 건축적인 원칙들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집의 장식을 과거의 수준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19세기 문화의 ‘눈가림한 야만주의’를 넘어서기를 원했던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근대적 스타일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으로서 기계생산과 산업적인 효용성, 과학적 진실 그리고 수학적인 원칙들과 같은 규준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비엔나의 건축학자 아돌프 루스는 우아한 단순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자인을 했던 사람으로, 장식을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시대의 잔유물, 곧 ‘퇴보’의 징표로 보았다. 1908년에 들어서면 장식에 대한 루스의 생각은 그 고전적인 선언서 <장식과 범죄 Ornament and Crime>에서 제시되고 있는 역사문화적 발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론적 견해와 제유한다. 루스가 보기에 장식을 향한 충동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류의 문화진화사에서 그 초기 단계부터 계속해서 이월된 것이다.

-문화적인 시대착오 상태를 넘어서서 장식은 절제를 잃었다. 그것은 가치있는 노동력을 낭비하고 생산비용을 올리며, 계속 바뀌는 스타일에 의해 자극받는 비합리적인 소비를 조장했다.

-합리적 모더니즘과 아르누보 모두는 빅토리아 문화의 ‘눈가림한 야만주의’에 대한 대안들을 제공했다. 기계미학은 빅토리아 상류계급의 부풀어오른 과도함을 거부하며 효용성과 통제의 이상을 제시했고, 아르누보는 빅토리아 시대에 공공연히 부정했던 에로티시즘을 개방하여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만족의 중요성을 소비문화권 내에 정위치시켰다.

-“건축은 관습에 의해 질식당했다. ‘스타일들’이란 거짓말에 불과하다”라고 르 코르뷔지에는 썼다. ... 우리 시대는 매일매일 자기 스타일을 결정짓고 있다. 그런데도 불행히도 우리의 눈이 이것을 식별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시각적인 문법을 제공해주었던 것은 바로 공장이자 기계이자 측량도구(기하학, 수학)였고 또한 조직적 통제였다.

제7장 기계적 감성
-사회적 다윈주의자 허버트 스펜서의 선언을 따르자면, 기계미학의 발전이야말로 선진적인 문명의 기호이자 보다 고차원적인 질서의 기호이다. 예컨대 전에는 비예술적이고 실용적으로만 취급되었던 공장들이 ‘구조적 단순성과 조화로운 비율’에 대한 하나의 모델로서 그 ‘고전적’ 지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많은 유럽 사람들에게 미국은 미학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로 받아들여졌다.

-유럽 땅에서는 가장 비천한 곳에서조차 장식적인 모티프들이 위계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갖가지 도구들에서 보이는 얽매이지 않은 단순성이 비단 모더니티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곧 과거의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을 제시하고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선언문에서 엔지니어야말로 새로운 스타일의 예기치 못했던 예언자이며 현대의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가정과 작업장에서 산업적인 가치를 강화함으로써 사회는 산업적인 진보에 대한 약속을 보강하고 복창하는 것처럼 보였다. 낡은 껍데기와 새로운 실체 사이에 계속되는 긴장을 저지하지 않을 경우 혁명적인 파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공장의 원리를 반영하는 스타일을 통해 점점 더 위험해지는 대중을 길들여야만 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 혁명은 피할 수 있다.“

-발전소나 공장의 기능적인 수직선, 또는 손익 막대그래프의 수직선이 이 시대의 기호가 되었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1930년대 초반 이후로 건축의 ‘국제스타일’이 성장함에 따라 이 근대적인 외관은 전세계를 뒤덮기 시작한다. 건축가 필립 존슨이 국제적 스타일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강철과 콘크리트가 결국은 새로운 스타일의 핵심이 됐다.”

-스타일의 영역에서 보자면 미국은 유럽에서 단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이 모더니티의 스타일 윤곽을 잡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국면에 그 스타일의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미국의 소비산업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점점 더 산업 디자인의 매력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저항적인 날카로운 톱니모양의 선들이 유선형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모양에 그 길을 내주었다. 유선형은 미래의 외관이자 “새롭고도 독특한 미국 최초의 형식적 접근방식”으로 기능했다. 기계가 유선형이 되면서 영혼을 갖게 되었다. 기계의 진보적인 능력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고 있던 산업적 위기의 시대에는 유선형이 보다 구형에 가깝고 부드러우며 인간화된 기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유선형은 기계의 복잡함과 위협적인 직각들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만약 모더니즘의 일차적인 과업이 기만적인 대상세계의 겉껍질을 벗겨냄으로써 그것의 내적 작용을 드러내고 심미화시키는 것이었다면, 유선형을 그것을 덧씌우는 것으로의 회귀를 뜻했다. 한때는 형식과 본질의 통합을 주창했던 모더니즘이 이제는 내적 메커니즘을 감쌈으로써 여러 가지 모양을 연상시키는 껍질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메커니즘은 숨겨져 있는 신비한 것이 됐다.

-장식성을 넘어서 근본 진리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확고한 전망으로 시작되었던 한 세기가 다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20세기는 유선형(그리고 그 뒤를 잇는 다양한 형대)의 발전과 함께 세계시장의 내적인 구조와 권력관계 그리고 가치개념등을 전반적으로 반영하는 장식성의 새로운 추상적 형식에 몸을 맡겼다.

-장식성의 귀족적인 전통이 그것을 낳은 사회의 위계적인 특권까지 일괄 인수했듯이, 스타일의 근대적 궤도는 권력의 근대적 지형들을 미화시켰다. 이제는 바로 이런 지형들을 살펴볼 차례이다.

4부 현대문화에서의 스타일의 정치학
제8장 형태는 가치를 따른다.
#1948년 로마
-<자전거도둑>(1948)은 파시즘적 영화, 또는 할리우드 영화의 지배 미학인 ‘수퍼 스펙터클’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술적으로 향상된 세계에 대해 그 스타일상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네오리얼리즘은 정치의 심미화를 거부했다.
-자바티니에게 네오리얼리즘 영화란 “현실의 허기를 똑바로 보고 분석하려는 압도적인 열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생겨난 것을 뜻했다. 네오리얼리즘은 “타인을 향해서, 혹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향해서 확고한 경의를 표하는 하나의 행위”와 같았다.

-네오리얼리스트들의 영웅 안토니오가 할리우드 스펙터클의 기념비적 스타인 리타 헤이훠스의 사진을 붙이기 위해 고용되었던 것이다.
-가차없는 노동시장에서 그는 시장의 차가운 합리성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는 하나의 상품이자 대상물이었다. 리타 헤이워스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서 그 가치가 시장의 힘에 의해 계산되는 하나의 ‘얼굴’이자 ‘몸뚱아리’일 뿐이었다.

-유혹적인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말을 건넨다. 특히 그들은 눈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말한다. 그것들은 저마다 신중히 고려된 창작의 산물로서 각기 특수한 매력과 목적에 따라 선택되며 나름대로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저 바라보기만을 교육받았지, 보는 동시에 해석하도록 길러지지는 않았다. 우리의 눈은 별다른 비판적 저항없이 이미지들을 빨아들인다. 마치 그 이미지들이 멀리 있으나 잡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신의 예정된 계시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상업적 이미지의 선택적 유혹의 틀 내에서 동시대 사회의 지배적 권력관계는 노동과 자원을 착취하는 임의적 법칙의 체계가 아니라 사물을 자연스럽고 심지어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둔갑한다. 권력의 비밀은 보호받는다.

#가치의 증발
-신용사회 이전에는 부의 개념이 현금으로 측정되어, 현금이 없는 것은 곧 물질적 빈곤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돈을 사용하는 것은 가난, 아니면 적어도 어떤 불법성(거리의 거지들, 마약 거래인들, 뇌물 수뢰인 등등)의 명백한 지표가 되었다.
-추상의 추상이라 할 수 있는 신용카드는 이제 지불능력을 표시하는 가장 광범위한 기호로, 어떤 한계 이상의 삶을 살고 있다는 공식적인 선언과 같다.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
-맨 처음 추상적 가치를 심미화하게 된 것은 상업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가운데 생겨난 일이지만, 그 무게없는 추상화의 미학을 심도깊게 연구하는 것은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 화폐와 신용 그리고 투기의 경제가 지배력을 갖기 시작한 이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마천루들은 대중문화에서 진보, 초월적인 것에 다다르기, 창조적인 인간정신의 자유와 같이 전반적으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마천루들은 20세기 초반 이래로 줄곧 진보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기리는 최고의 기념물이었고, 모더니즘을 상업적으로 해석해놓은 구현물이었다.
-그러나 마천루는 특정한 사회 및 역사의 외관을 구체화한 형식이다. 그것의 웅장함은 추상적인 금융투자가 구체성과 풍부한 자원성에 기반한 가치체계를 압도하는 사회에 기초한다.
-마천루의 수직방향은 땅과 그 자원을 가장 상식적인 부의 지표로 이해하는 사회의 기념물들에서 보이는 수평방향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건축이 재산과 가치의 의미변화를 표현하는 시각적인 수사라고 할 수 있다면, 마천루는 자연의 조건에 덜 의존하는 새롭고 좀더 투기적인 사회가 도래했다는 신호라 할 수 있다.
-건축에 대한 하나의 접근방식이었던 마천루는 이윤을 따르는 형태의 본질을 구현했다. 이제는 지반을 전혀 확장하지 않고도 탐욕과 기술공학이 허락하는 만큼의 높이까지 부동산의 가치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층건물은 제일 높은 층에 있는 사무실이나 전망대를 통해 개별적이고도 유례가 없는 권력의 경험을 제공한다. 그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대표이사나 관광객은 신의 눈으로 인간의 무리를 내려다본다. 아래에 있는 인간들의 문제는 심심풀이처럼 하찮은 것으로 축소되고 위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넓은 시야로 인해 자만심을 갖게 된다.

-1920년대가 되면 추상적이고 무게가 없는 가치에 관한 이론의 관할구역이 건축의 영역을 넘어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소비자공학의 경제적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이에 자극을 받은 새로운 미학적 원리들이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빗물질성이라는 모티프, 즉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라는 원칙이 계속하여 반복되었다.

-여성의 패션은 이런 근대적인 경향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였다.
-값싼 이민 노동자들은 착취하는 공장에서 생산된 이 초기의 대량생산 패션은 전통적이고 귀족적인 엘리트 집단이나 부르주아 졸부들의 패션을 모방했다.
-그러나 1920년대가 되면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패션의 윤곽선이 변화한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주요 물자들이 전쟁용으로 징발되었다.
-패션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료를 더 절약하고 덜 낭비하는 사용방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여성의 변화하는 사회적 역할도 새로운 패션의 기준을 독려했다.
-가정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코르셋과 거추장스런 겹겹의 옷은 자격을 상실한 장치임이 드러났다. 옷을 개조하는 것은 여성해방의 기초 구성요소를 차지했다.
-1920년대에 패션가는 재료의 재배치와 여성의 사회적 포부에 부응했다. 건축의 영역에서 가장 똑똑한 이데올로그를 발견했던 추상적 이상이 여성의 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여성 패션이 딱딱한 신체에 의거하고 있다면, 새로운 패션은 땅에 구속된 수평적 확산의 개념 대신 구속받지 않는 수지적 우월함을 채택했다.

#몸의 정치학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가치의 심미화를 가장 심도깊게 증언해주는 영역은 다름 아닌 신체적 이상형의 진화에서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상적 신체 표현에는 여전히 토지적 가치가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성향들이 반영되어 있었다. 무게가 나가는 장식품들이 귀하게 여겨졌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잘 먹어서 통통해진 신체는 물질적 풍요를 가시화하는 증거에 해당했다.
-대상적 가치가 즉각적으로 재생산 능력과 결부되었던 여성들에게 큰 가슴과 토실토실한 엉덩이 역시 아름다움의 가장 확실한 요소였다.
-몸무게 감량을 위한 절식은 아직 20세기의 강박관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여성의 마른 신체는 신경증과 균형 잃은 삶의 징후에 불과했다.
-한때는 농경적 가치의 풍요로운 저장고를 상징했던 여성 신체의 이상형도 추상적 시장가치의 유동적 특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1910년대 중반 이후로 신체의 부피는 부담스러운 초과분이자 유행에 뒤떨어져 있다는 신호로, 구시대적인 취향으로 간주되었다. 그 시절 대중잡지에서 ‘신여성’이라 불렸던 여성들은 “가늘고 늘씬하며 근육질의 표범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문화적 관습에 대항하며 어디서나 새로운 문화를 선전해대는 목소리들, 특히 대중매체는 날씬함의 미덕을 끈덕지게 선전했다.
-할리우드 환상공장은 관중들이 계속해서 모방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꾸준히 제공했다. 표준화된 마네킹들이 차에서 담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팔아먹는 광고의 기초요소로 자리잡게 되고,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라는 말이 점차 상업적 풍경 속의 광고간판들을 뒤덮기 시작했다.

-세계의 유수 산업디자이너였던 레이몬드 로위는 1979년 자신의 50년 경력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러한 경향성을 지적했다.
-로위는 자신의 ‘스타라이너 Starliner' 디자인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자동차의 스타일링이 진정한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했다고 말햇다. 이때까지 본체의 ’캐릭터라인‘은 차를 둔하게 보이게 하는 판들로 이뤄졌다고 그는 썼다. 구근형이 이른바 1930년대 유선형 자동차의 특징이었다. 로위는 대안적인 디자인 접근방식에 입각하여, ’음각(쑥 들어간)표면‘을 도입했다. 그 결과 “스타라이너가 배고프고 가냘픈 모습을 하도록” 만들려는 그이 목표를 달성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 개조작업에서도 로위는 위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사람의 모습을 본따는 공식을 사용했다. 1916년에 최초로 도입된 코카콜라의 저 유명한 ‘허블 스커트(무릎 아래를 좁힌 긴 스커트)형’ 병은 풍요로운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이상형에게 바치는 찬사를 유리로 표현한 것이었다.
-거의 50년이 지난 다음 로위가 이 익숙한 트레이드 마크를 개조하라는 임무를 받았을 때 그는 단지 변화한 여성다움의 윤곽선에 의거하면 되었다. 액체유리를 늘여서 병의 살을 뺌으로써 코가콜라 병은 이제 “날씬해진 모습”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생산품 디자인을 이상적 몸매(특히 여성의)와 결합시키는 일이 매우 흔해졌다. 담배산업은 버지니아 슬림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과정을 문화적 상투수법으로 만들었다.

-분명히 절식과 체중감량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 이후 여세를 몰아 오늘날에 이르면서 ‘몸매’에 대한 열광의 정점에 다다르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체의 영역에서 비물질성을 추구하다보면 병리적인 결과에 다다른다. 바로 그 육체의 존재자체가 완전함과 만족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거의 기아상태에 있는 신체적 이상, 구조물리학의 초월을 주장하는 건축적 이상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우선성의 도치는 숙명적인 타락을 드러내준다.

제9장 형태는 권력을 따른다
#단단한 신체들
-기 앙도로Guy Endore의 <강철인간>;엔지니어가 부드럽게 작동하는 통제 시스템의 창시자라면 그 시스템은 숙련노동자의 파멸 그리고 기계와 인간의 맞바꿈에 입각하고 있다.
-지칠줄 모르는 ‘강철 팔뚝’을 가진 기계는 남성성의 원형으로 등장하는 바, 그 거푸집으로 새로운 인간형을 떠낼 수 있다. 만약 여성의 몸에 대한 이상화된 관념이 근대적 가치구조를 연계해주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면, ‘남성적 육체’는 근대적 노동조건과 노동규율이 새겨 있는 명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 조지 룬드버그와 미라 코마로프스키 그리고 메리 앨리스 매키네르니는 1934년에 소비사회 출현의 맥락에서 ‘여가’의 문제를 다루는 글을 썼다. 그들은 대량생산 산업과 소비화된 ‘여가’에 대한 정의 사이에 공생관계가 있다고 보고 노동의 세계와 일상적 삶의 양립 가능성을 획득할 필요에 대해 주목한다.
-이러한 이상은 34세의 뉴욕 투자회사 중간간부인 레이몬드 H의 일상에서 실현된다.
-그의 마음의 눈에 존재하는, 사진적 관용어의 힘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고 및 기타 다른 미디어의 스타일을 통해 계속 강화된다. 완벽하게 균형잡힌 기계처럼 보이는-그 대가로 육체는 차고 단단해진다-이상형은 우리의 눈 앞에서 계속 행진하고 있다.
-레이몬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이 광고들은 1980년대 중간계급의 신체적 수사학의 일부이다. 그들 광고 모두는 자기탐닉적 업적주의와 과시적 소비행위 그리고 경쟁적 육체 전시의 대상으로서 자아관념 등이 뒤섞여 위압적인 성공의 상징이 되어버린 한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미국의 초기 산업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헨리 드레퓌스; 인체는 측정될 수 있고, 정신적 동기부여는 세분화될 수 있으며, “인간행동과 기계 디자인” 사이의 편차는 메워질 수 있다.

#통제선
-푸코의 판옵틱주의라는 용어는 감옥을 위한 제레미 벤담의 혁신적 디자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벤담의 책 <판옵티콘Panopticon>(1791-92)에서 제창된 바 있다.
-벤담이 기술했던 바와 같이 판옵티콘은 “원형으로 된, 반짝거리는 쇠우리이다. ...죄수들은 원주형으로 둘러싸여 있는 각각의 방(세포)속에 있고, 직원들, 간수장, 목사, 외과의사 등등은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판옵틱 건축은 후광, 중앙감시소 그리고 공간적 통일을 새롭게 이용함으로써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이미지로 재현해주었다. 그것은 또한 공간의 개별화와 대칭적 규제를 통해서 감시와 복종 그리고 규율의 우선성을 구현했다. 그것이 의도했던 결과는-감옥에서 적용하든 아니면 공장이나 학교에서 적용하든 상관없이-사회적 통제를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개인(죄수, 노동자, 학생)이 보이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격감시켰다.

-공장자본주의는 경영자들에게 간수들이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많은 문제거리들을 던져주었다.
-동일한 문제들이 학교, 병원, 수용소 그리고-사무노동의 성장과 더불어-사무실의 설계형태를 만들어냈다.
-다니엘 번햄은 미국 박람회의 수석 건축가이자, “진보적인 도시계획운동을 강조하는 사회적 전망에 대한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1909년에 출간되었던 <시카고 도시계획>의 저자였다.
-“도시에는 유지되어야 할 위엄이 있으며 훌륭한 질서는 물질적 진보에 필수적인 것이다.” “도시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을 고취하면서 거주자들의 눈을 사로잡게 될 기념비적인 공공건물군은 그 질서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기술적 완벽성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
-로고는 식별가능한 상표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술적 지배, 숭고한 완결과 통제의 리듬까지 전달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엘리엇 노이즈가 1950년대에 착수했던 IBM 이미지의 관현악적 편성 또는 다른 대기업들의 값비싼 ‘외관’을 들여다보면 정확성과 우수성 그리고 탈인간화에 대한 강조가 분명해진다. 상표나 제품 디자인이 해당 기업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을지라도 그 디자인은 인간이 개입했다는 어떠한 시각적 자취도 없다.

-공장의 많은 사람들이 강고한 관료주의적 미로나 생산의 혼돈 속에서 틀에 박힌 미미한 작업을 수행하느라 자기 인생을 소모하고 있을 때, 많은 상품들, 특히 가구나 전자제품들의 디자인은 당신이 그 상품을 구매하게 되면 통제할 수 있는 손을 가지게 되리라고 암시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계에서는 전투기와 로케트의 외관이 가정용 차의 외관에 응용되고 있었다. 제너럴 모터스 사에서는 디자인 감독 할리 얼이 이중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에서 영감을 받아 자동차의 꼬리지느러미 시대를 열었다. 크라이슬러 사에서는 자동차의 계기판의 모서리들을 제트 전투기의 조종실 조절판처럼 둥글게 처리했고 몸체는 로케트와 제트 항공기의 ‘시각적 어휘들’을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장식적 웅장함에 대한 경쟁이 19세기 후반 무렵 중간계급의 형성에 본질적인 것이었던 것처럼 예술 테크놀로지의 위엄에 대한 접근은 20세기 중간계급의 정체성 확보에 근본적인 것이다.

#판옵틱주의의 녹화
-기업 모더니즘이 진보의 ‘공식적인’ 역사를 표현했다면 1930-40년대에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허기가 생겨나고 있다. 서부영화는 신화적인 과거, 즉 광활한 대지, 거친 자립심 그리고 소유의 기득권에 대한 깊은 불신 등을 통해 프론티어적 삶의 가능성 및 특징을 형성하고 있었던 그 시기로 관객들이 되돌아가게 해줌으로써 이러한 허기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40년대가 되자 도피와 새로운 탄생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바로 도시 근교 그리고 그것에 대한 관념의 성장이었다.
-교외의 기호학적 형태는 산업문명의 질병을 치료하는 상징적인 해독제 역할을 한다. 만약 도시 및 도시의 도상학이 노동과 상업적 우선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교외는 레저가 공식적인 주요 모티프 역할을 하는 그런 장소이다.
-1940년대 중반까지 주거지의 대량생산은 군사시설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줄과 줄을 맞추어 집단적으로 막사를 배열함으로써 인식된 질서, 도구화된 질서를 표현하고 있었다. 건축에 대한 그러한 판옵틱한 접근방식은 또한 고소득을 내는 실험양계장에 사용되기도 했다. 제2차대전 시기에 군대용 주거지를 만들었던 르비트는 1945년이 되자 ‘생산공정 라인적인 건축기술’을 ‘시민용 건물’의 건축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건축물들은 헨리 포드가 자동차 생산공정 라인을 혁신했던 그 노선에 따라 지어졌고 르비트타운의 선전은 광고와 소비자공학이 닦아놓은 노선을 따랐다.
-임계거리에서 조망해보면 집들 자체도 일률적인 격자형, 곧 수평적 공간의 판옵틱한 조직으로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에 제너럴 모터스 사는 견고하고 실용적인, 그러나 단일 모델이었던 헨리 포드 모델 T에 대한 마케팅 전략으로 모델과 색상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1940년대 중반에 부화하기 시작한 대량생산 주택산업은 표준화된 다양성에 접근하는 그들 나름의 방식을 발견했다.
-케네스 T. 잭슨은 60년대가 되면 “우연히 교외를 방문한 사람은 자신이 보스턴 근교에 있는지 아니면 달라스 근교에 있는지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자동차가 교외의 생활에 동기를 부여하는 원동력이었다면, 텔레비전은 그 반 대 짝에 해당한다.
-텔레비전은 일찍이 그 유례가 없는 이미지 기계를 자정 속에 주입시키면서 전후의 일상생활에서 강력한 가구로 비치되었다. 1950년 <건축포럼>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대다수의 대규모 건축업자들은 이 붙박이 TV가 “거실의 중심을 차지했던 값비싼 벽난로를 급속하게 제거해버리고 궁극적으로 그 역할을 대체”해주길 바랬다.
-텔레비전은 강력한 재통합의 도구를 출연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증가추세에 있던 개별화된 인구들을 유사한 이미지와 유사한 정보 그리고 유사한 유명인사와 유사한 상품들로 둘러싸서 통합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텔레비전은 교외적 판옵틱주의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제10장 형태는 낭비를 따른다.
#돋보이는 소비
-폐기물 상당부분은 포장품들이 차지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포장만이 아니다. 점차로 과거에는 ‘내구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생산품들이 재빠르게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일회용 제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그것은 소비하는 행위를 폐기하는 행위와 용접시킴으로써 시장이 계속적으로 더 많은 상품을 갈망하게 만든다.
-일회용품이 초역사적인 인간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는 주장조차 제기되고 있다.
-만약 소비주의의 내재적인 경로가 지속적인 폐기나 소모의 과정으로 이어진다면 소비사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낭비란 그 과정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낭비를 통해 사람들은 재충전하며 쾌락을 획득한다.

#역동적인 노화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낭비가 오락의 수준으로까지 격상한다.
-그러나 가장 눈에 잘 띄고 지속적인 낭비의 미화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스타일과 포장술에서 찾을 수 있다.
-20년대초가 되자 광고산업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것들의 과정에서 파괴자이면서 창조자로서”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광고인 에른스트 엘모 캘킨즈는 포드의 제1경쟁사였던 셰빌레사가 ‘기계적인 효용성에 디자인과 컬러’를 덧붙임으로써 저가 자동차 생산시장을 상당량 잠식했음에 주목했다. 캘킨즈는 포드의 경우를 교훈으로 삼아 스타일의 문제를 단순히 사업안건에 추가하는데 그치지않고 사업적 성공의 열쇠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지속적이고 방법적인 스타일의 변화를 도모하는 사업전략을 명확히 천거하기 시작한다. 1930년에 쓴 <근대적 공공성>에서 캘킨즈는 자신의 전략을 예외적으로 직접적인 단일 문장으로 축약한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구형 만년필, 주방기구, 목욕탕, 자동차 등에 싫증을 내게 만드는 것-유행이 지나가버린 낡은 것이라는 이유로-이 목표이다. 이런 사고를 가리키는 기술적인 용어가 노화주의obsoletism이다.
-1930년대에 경제공황이 기업의 판매경쟁의 잔혹함을 강화함에 따라 캘킨즈의 착상의 최고의 원칙이 되었다. 로이 셸던과 에그몬트 애런즈는 1932년 <소비자공학>에서 근대적 조건이 의미의 재정의를 요구했다고 주장하였다.
-셸던과 애런즈에게 이제 “노화는 적극적인 동력으로”,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자원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었다.
-셸던과 애런즈는 특히 이런 식의 전개과정에서 대중매체가 하는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것에 열광했다.

#상품과 기억
-헨리 드레퓌스는 새로 디자인한 상품조차 어떤 방식으로든 전에 있던 상품과 기억들은 불어일으켜야 한다고 보았다.
-성공적인 상품판매는 디자인의 그 능력, 즉 사실상 그 디자인이 대체하려 했던 것에 대한 상징적인 복원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에 의존한다고 드레퓌스는 주장했다.

-다소 다른 관점에서 J. 고든 리핀코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효과적인 포장 디자인은 ‘기억가치’라는 요소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레이몬드 로위는 기업체 상징물의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작업을 회고하는 글에서 이와 유사한 어조로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타입들 다수-엑손, 셸, 비피 등 석유화학제품, 나비스코,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그리고 코카콜라의 근대 최신형-를 만들어낸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시각적 기억보존물에 관한 우수한 색인집을 찾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로고타입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심지어 흘낏 본 사람조차도 그것을 결코 잊지않기를, 아니면 최소한 그것을 ‘천천히’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품 및 그 제품을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들이 대중의 기억에 고정되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광고와 선전에서 결정적이다.

-반문화적 경향들이 때때로 스타일 산업을 기습하기도 했다. 60년대 그리고 그 이후의 다른 시기에도 대안적인 하위문화의 발생은 저항적 스타일-언어표현, 옷입는 방식, 음악, 그래픽에서-을 유포시켰는데 특히 그것은 전통적으로 스타일 소비대중 가운데서 가장 뒤처진 그룹으로 여겨졌던 젊은층을 사로잡았다.
-마찬가지로 1970년 1월 환경운동이 시작되자 그 언어의 시장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향후 10년간 철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뜨거운 단어는 환경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윤, 판매, 선전을 소매하는데 핵심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역설적이게도 소비경제에 필수적인 오염과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것의 일부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그 단어는 이제 보다 많은 소비, 보다 많은 쓰레기를 선전하느네 일조하는 하나의 미끼로 취급되었다.

-의미를 도용하여 ‘상품화’할 수 있는 능력은 스타일 시장의 지속적인 특징이다. ‘펑크’가 1970년대에서 1980년데 사이, 분노한 사회적 선언으로부터 의상 스타일로 변질되었던 과정은 좋은 사례를 제공해준다.

-이미지는 또한 우리에게 과거를 보는-해석하는 것이 아니라-한 가지 방식도 제공해준다.
-과거 역시 판매 가능한 스타일로 회생한다. 1980년대에 세 번이나 재활용되었던 ‘60년대’는 핵심사례들을 제시해준다.
-그러나 문화의 쓰레기더미에서 부활시킨 이미지들을 수집한 것이라 할수있는 그 고상한 가치들은 그자체로 상품, 곧 구매되어야할 어떤 것 이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교환가치로서의 가능성 때문에 재생된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 수집한 과거가 매력적이긴 하나 공허한 판매전략의 형태로 그들에게 되돌아옴에따라 역사는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역사적 기억이 파괴되어버린 미래세계를 묘사한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스타일 시장의 파사드 너머까지 조망하지 못하는 한, 오웰의 경고는 여전히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이 미래를 조종한다. 또 현재를 조종하는 사람이 과거를 조종한다.”


결론 스타일의 정치적 요소
(명백한 진리의 표시로 보이는 사실들이 실상은 진리를 부정한다. ... 진리는 그 사실들의 파괴를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허버트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이미지 관리’는 수익성높은 사업이 되었으며 동시에 상업, 산업, 정치 및 인간 상호관계 영역에서 사실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스타일이 필수적이며, 나아가 지배적이기까지 한 요소가 되어버린 또다른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공식적인 연설에서 찾을수 있을 것이다.
-도로시 사르노프는 ‘스피치 다이나믹스’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지 컨설턴트이다. 사르노프는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청중의 8%만이 연설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42%는 연설자의 외모에 그리고 50%는 연설자가 말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움직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장술”이라고 사르노프는 주지시킨다.

-크리스찬 디오르는 1986년도 광고에서 스타일은 “꿈에서 비롯되며 꿈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렇듯 근원적이고도 무의식적인 종류의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에 스타일은-정보의 한 형태로서-사고를 방해하게 되는 것 같다.

-허버트 쉴러는 이른바 새로운 정보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보에 대한 대중적 접근이 점차로 줄어드는”이었다고 주장해왔다. 확실히 지난 20년간 우리는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전달하기 위한 수많은 혁신적인 기술과학의 출현을 목도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 경제, 과학, 기술 정보들의 출처-예전에는 대부분 공공 도서관이나 기록보관소에서 찾을 수 있었던-는 상업자본의 영역, 곧 수집, 포장되어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판매됨으로써 이윤을 남기는 영역으로 점차 넘어가고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정보에 대하 접근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면 스타일을 갖춘 정보의 밀물은 점차로 거세지고 있다.

-텔레비전뉴스만큼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없다.
-진실은 외관의 유희를 넘어서 시장의 힘에 지속적으로 종속당해버렸다. 시청률 순위조사 시스템은 해당 광고에 부과되는 광고료를 결정한다. 그것은 뉴스프로들이 시청자들의 대규모 ‘시장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에 견주어 그 정보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확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과정에서 정보는 info-tainment로 넘어가게 된다.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생겨난 뉴스는 순위를 매기는 게임을 통해 드라마이자 스릴러이자 엔터테인먼트로 변질된다.

-화보중심의 신문과 잡지가 발달함에 따라 매체들 각각은 정기적인 오락거리들에 대한 정보들로 채워지게 된다.

-투표권이 유산계급을 넘어서서 확산되기 시작한 앤드루 잭슨의 집권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정치적 스타일을 만드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지배엘리트들의 객관적인 권력 및 이익과 다른 한편으로는 부상하는 대중의 민주적 열망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페센은 다양한 자료들은 요약하여 잭슨시대에 탄생한 근대적인 캠페인 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선전선동이 관행으로 정착했다. 평균적인 남성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그 정치가는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누더기를 걸치고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받았던 최고교육은 숨겼던 것이다.“

-1950년대 이후로 계속하여 더욱 발전해온 소비문화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선거정치는 선전, 소비할 수 있는 시장품목을 하나 더 늘리는 셈이었다.
-미디어 컨설턴트 영역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들 대부분은 애초에 상품판매의 영역에서 발전했던 기술들이 이제 정치적 영역에서 응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중 정치학은 점점 이미지 마케팅에게 그 지위를 이양한다.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 경력이야말로 가장 명백하게 이것을 보여준다. 1947년 에드워드 버네이는 근대의 대중매체 사회에서 정치적 선거인들을 양성해내는 일은 체계적인 ‘합의의 기술공학’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는 정치가 순수한 홍보문제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대변한다. 모든 사회적 쟁점들은 인식의 문제로 축소시킴에 따라 사회적 쟁점들의 선언은 인식 차원의 일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변화 대신 이미지의 변화가 존재한다.